산문

나의 하루

심준섭 2008. 11. 27. 13:23

브로큰세븐 매거진 에디터's 레터에 썼던 글인데 잡지에는 편집 관계로 팍팍 자체 감량을 치뤘기에 블로그에라도 원본 버전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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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도 7 15분에 일어났다. 나이를 아무리 먹으면 뭐하나, 25살 먹고도 아직 아버지께서 깨워주신다. 아버지께선 이미 샤워도 하시고 이런 저런 준비도 마쳤다. 내년이면 환갑이신데 말이다. 오늘도 아침은 토스트에 계란이다. 우리 집의 아침은 토스트에 계란 아니면 토스트에 소시지, 아무튼 토스트에 무언가다. 아침에 먹는 토스트를 가장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침에 만드는 토스트가 가장 차리기 쉽다는 것은 알고 있기 때문에 군소리 없이 먹는다. 그것도 7 15분에 정상적으로 일어났을 때 얘기다. 10분만 늦게 일어나도 어머니가 일찍 일어나서 졸린 눈 비벼가며 눈꼽으로 만드신 그 토스트마저 짤 없이못 먹는다. 그럴 때는 식사를 생략한 모든 과정을 대충대충 한 체, 숨 한번 겨우 쉬고 바로 오늘 신을 신발을 고른다.

 

당신의 출근길에 나를 태워주시는 아버지 덕분에 전철을 타러 갈 때는 부자지간 둘이지만, 전철을 기다릴 때는 여럿이 함께다. 모두들 알고 있다. 서로 이 시간 때에 늘 얼굴을 마주친다는 것을. 늘 한결같이 아침마다 만나는 사람들이기에 어느덧 패밀리의식이 생긴 걸까? 어느 날 친구에게 말했다. ‘너네 전철역에선 어떤 사람들이 타니?’ 말해놓고 서로를 바라보다 한참을 웃었다. ‘니네 전철역인지, ‘너네 전철역인지 그런 것이 어디 있느냐면서, 그리고 나의 멍청함을 동시에 탓하면서 말이다. 내가 기억하는 것만큼 그들도 나를 기억할까? 나는 몇몇을 정확히 기억한다. 서구적인 얼굴이지만 그에 반해 키는 밋밋한 그녀, 그녀는 주로 치마를 입을 때 무릎 아래로 내려오는 것을 입는데 그럴 때면 걷는 뒷모습이 너무나 귀엽다. 어깨가 넓고 이목구비가 시원시원한, 그리고 내가 내리는 역까지 함께하는 양복쟁이 동년배(로 보이는)남자. 아마 이런 친구라면 분명 여자친구가 줄을 지어서 있겠지. 마찬가지로 내가 내리는 역까지 함께하는 멋쟁이 중년 아주머니. 이 아주머니의 젊은 시절은 굳이 상상하지 않아도 눈에 선하다. 분명 남자 여럿 울렸을 것이다. 아니면 말고, 그 시절 남자들은 나와 취향이 다를 수도 있으니.

 

그럼에도 서로 인사 한번 하지 않는 친구들과 헤어지면 갑자기 혼자가 된다. 전철역에서 사무실까지는 도보로 15분 거리에 있다. 5분이면 도착하는 신사역에서 내릴 수도 있지만 갈아타고 조금 돌아야 하는 것은 물론 심지어(?) 환승까지 해야 한다. 비록 사무실에서 더 먼 역에서 내리지만 일찍 내리는 덕분에 지각은 하지 않는다. 평소보다 3분 늦을 것 같으면 조금 빨리 걷고, 5분 늦을 것 같으면 뛰면 되니까. 조금 힘들어도 늦는 건 별로다. 사실 질색이다.

 

사무실에 짐을 두고 바로 편의점으로 간다. 빵 한쪽에 계란 하나론 배가 차지 않으니까 말이다. 25살 남자에게 애매한 양의 아침은 과식의 지름길이다. 충분히 먹고 또 먹게 되니 말이다. 꼿꼿이 서서 땅을 봤을 때 엄지발가락이 안 보이는 수준은 아니지만 새끼발가락은 간당간당하다.  성인병 직행열차를 타기 위해 티케팅 중인 나에게는 말려줄 그 누군가가 필요하다. 이러다 그 어떤 누구라도 봐주기 힘든 체구가 될지 모르니까. 심각김밥과 주제에 살 뺀다고 고른 콜라제로를 먹고 나면 시계바늘은 9 15분을 가리킨다. 아버지가 깨워주신 그 시간부터 단 2시간 지났을 뿐이다. 짧은 시간이지만 꽤 많은 일이 일어난다. 하루는 24시간, 남은 22시간 동안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대략 예상이 가능하다. 모르긴 몰라도, 분명 꽤 사랑스러운 순간들일 것이다. 일어난 순간부터 자리에 앉을 때까지 꽤 행복하게 하루를 시작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