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인상

산문 2009. 11. 17. 12:17

세상에는 많은 남자들이 있고, 그들은 각자 다른 취향을 가지고 있을 것이기 때문에, 각자가 바라는 여인상 역시 각기 다를 것이 분명하다. 나도 마찬가지로 나름의 이상향이랄지, 여인상이랄지 하는 것을 막연하게나마 갖고 있는데, 근 몇년 간의 경험으로 그것이 보다 명확해졌기에 한번 적어 본다.

사람은 내적인 것과 외적인 것이 있지만, 나는 인간 이상의 존재는 아니기에 우선 외모가 눈에 들어오는 편이다. 내가 바라는 외적인 이상형은 화려하게 예쁜 모습이 아니다. 난 단연코 예쁨보다는 조화로움이다. 오밀조밀하게 이목구비가 조화가 잘 된 모습이 커다란 눈과 높다란 콧날보다 더욱 아름답게 느껴진다. 지금보다 나이가 적을 적에는 치열이 고르지 못하거나 교정을 한 이들보다는 가지런한 이들을 더욱 흠모했다. 하지만 지금은 각각 나름의 매력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지금보다 나이가 적을 적에도 지금도 나는 눈이 가늘고 긴 여성에게 매력을 느낀다. 그런 여성들이 웃으면서 보여주는 눈웃음이 참으로 아름답다. 선해보인다. 웃는 모습이 환하고 선한 모습을 싫어할 사람은 없다.

외모에 대한 이야기는 더 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어차피 세상에, 내가 외적으로 완벽하게 만족할 사람이 존재하리라는 생각은 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눈이 높은 편도 아니고 까다롭지도 않지만, 여인상을 두고 외모를 기준으로 꼽는다면, 삼라만상을 담은 외모를 지녔다 하더라도 가히 만족치 못할 부분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내 여인이 나와 함께 많이 웃을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웃음이 공유된다는 것은 참 행복한 일이다. 나의 일상에 그 어떤 힘든 일이 있고, 억울한 일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들을 웃음으로 풀어낸다면, 그것들은 능히 견딜만한 일들에 불과할 것이다.

웃음을 공유할 수 있다면 그곳이 공원 벤치여도 좋고, 까페여도 좋고, PC방이어도 좋고, 영화관이라도 좋다. 그곳이 어떤 곳이라도 좋다. 나는 웃음이 삶의 한 이유라고 생각한다. 울고 싶은 날은 있어도 울기 위해 사는 삶은 없다. 나는 나로 인해 누군가가 웃는 것이 좋고, 누군가가 나를 웃기는 것도 좋다. 내가 웃길 수 있는 그 사람이 내 여인이라면 나는 정말로 행복할 것이다. 웃음으로 인해 시간이 가는 속도가 너무나 빨라져 하루 하루가 아까울 지경이라면 그만큼 빛나는 삶이 있을까 한다.

웃음을 공유할 수 있다면 그 김에 취미 또한 공유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렇다고 나의 여인이 나를 만나기 전부터 탁구와 당구, 그리고 노래에 심취해있거나 글쓰는 것을 즐기거나, 패션에 무진 관심을 보이거나 할 필요까지는 없다. 하지만 위의 것들을 좋아하는 나를 그대로 인정해주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가끔씩은 함께 즐겨보려고 노력을 해보았으면 좋겠다. 가끔씩은 탁구장도 가보고, 당구장도 가보고. 함께 노래방에도 가고, 노래에 대한 이야기를 몇시간씩 나누고. 그랬으면 좋겠다. 글 쓰는 것을 즐겨도 좋겠다. 요즘처럼 글쓰기 편해진 세상이 과연 있었을까. 팬과 종이가 없더라도 그보다 흔해져버린 컴퓨터만 있다면 언제 어디서든지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나의 여인이 쓴 글을 내가 읽고, 그에 관한 감상을 말해주고 싶다. 그리고 내가 일적으로든 취미로든 쓴 글을 그가 읽고 평하거나 좋아해주었으면 좋겠다.

나 역시 그가 좋아하는 것들을 기꺼이 인정하고 때로는 그것들을 나도 한번 좋아해보려 노력해볼 예정이다. 나는 이미 가진 취미가 너무나 많기 때문에 새로운 취미를 받아들이는 것이 익숙치 못하고, 그랬기 때문에 과거에 나와 만났던 여인들이 추천해주었던 취미를 나의 것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하지만 남이 나의 취미를 즐겨보고자 하는 마음은, 내가 그의 취미를 공유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생겨난다는 것을 이제는 알았다.

너무 순수하여 연애을 알지 못하지도, 그렇다고 너무 야하지도 않았으면 좋겠다. 어느 것이든 지나친 것은 좋지 않다. 연애를 알지 못하는 것은 단순한 순박한 것이 아닌 새롭게 배워가야할 것들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누구보다 연애를 잘하는 선수도 아니며 그렇기 때문에 좋은 선생님이 될 수 없을 것이다. 나를 잘 다루어 주었으면 좋겠고, 나에게 잘 끌려와주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너무 야하여, 나를 조종하려고 하거나, 거짓을 부린다면 그처럼 싫은 것이 없을 것이다.

나의 힘듦을 함께 공유해주고, 진실된 충고를 해주며 그럼에도 친구와는 달라 절대적인 내 편이 되어 주었으면 좋겠다. 송곳과 같은 충고는 나의 보석과 같은 친구들이 많이 해주고 있으니, 순백색 거즈처럼 나의 상처를 덮어주었으면 좋겠다. 그가 나를 덮어준다면 나 역시, 그를 덮어줄 것이다. 아니, 내가 그를 덮어줄 테니 그가 나를 덮어줄 것이다.

말한 모든 것들은 참으로 과한 바람일 것이다. 어쩌면 누구나 바라는 여인상일 것이며, 누구나 바라는 높은 경쟁율의 여인이 나의 여인이 될 가능성 역시 적을 것이다. 이렇게 이 글을 적는 이유는 내가 그런 여인상에 걸 맞는 이가 되었으면 하기 때문이다. 바라는 것만 많은 이는 바라는 만큼 얻기가 어렵다. 허나 바라는 정도를 정확하게 알고 그것을 얻기 위한 합당한 노력을 한다면 어찌 세상이 그 노력을 매번 매몰차게 배반하겠는가 하는 생각이다. 그를 만나는 것이 내 생활이 되기 바라며, 나를 만나는 것이 그의 생활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 그리 크게 못난 욕심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Posted by 심준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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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못하겠습니다.

운문 2009. 11. 10. 09:58


담담히 떨어지던 단풍이 몹시도 그립고
옆에서서 걷던 그대의 안경에 비추인
바람결에 자리를 옮기는 구름들이 그립습니다.

제가 그리는 것은 그리도 간단한 것입니다.
어느날 했었던 짧은 입맞춤도,
주의 생신날 볼법한 눈부신 거리도 아닙니다.

사실 내게 그리 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팔다리 때이고 눈코입 감긴 저였습니다.
당신이 보여준 푸른 날카로움이 제겐 무섭습니다.

가슴에 맺혀서 꽃심듯 꼽았습니다.
그런 당신을 이제야 뽑아서 그런지
아프고 시려서 잊지를 못하겠습니다.

Posted by 심준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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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어느 날

산문 2009. 10. 20. 10:32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10월의 마지막 밤을"

'이용의 잊혀진 계절 중에서'

제철 과일이 있고 제편의점 초콜릿이 있듯 노래도 제철 노래가 있다. 겨울에 듣는 김민기의 '가을 편지'처럼 때 늦은 것이 있을까? 김현식의 '봄 여름 가을 겨울'처럼 이름 그대로 사시사철 상록수 같은 노래도 있지만, 마찬가지 이름 그대로, 권성연의 '한 여름 밤의 꿈'은 수박이 딸린 평상에서, 이용의 '잊혀진 계절'은 찬바람 부는 창가 옆의 책상에 엎드려 라디오로 듣는 것이 제맛이다. 하지만 하필 - 신나야 한다는 강박을 전제로 하는 여름을 제외하곤 - 가을철 노래가 유난히 시절을 타는 것은 참으로 의문이 가는 일이다. 감히 추측을 해본다면, 그 중 한 가지 이유는 가을의 제철 노래들이 참맛을 내는 시간이 짧음일 것이다. 다른 이유는, 스산한 가을은 참 저린 계절이기 때문일 것이다.

얼마 전에 친하게 지내는 형과 치킨에 맥주를 기울였다. 만난 시간이 9시 반이고 헤어진 시간이 새벽 2시경인데 그저 어중이떠중이들처럼 홍대를 거닐다 고작 한것이 치킨에 맥주였다. 그날따라 치킨이 짜더라. 나눈 속없는 대화들이 아련했다. 가을에 나누는 대화는, 그 대화의 주제가 이별이라면 유난히도 그 맛이 진하다. 그것이 쓴 것이라면 더욱 쓰고 짠 것이라면 더욱 짜다. 신기할만큼 그러하다. 그날도 그랬다. 치킨의 맛은 튀기는 사람의 실수 탓이겠지만 시고 짭짤한 대화는 가을 탓이었으리라. 낮에는 높고 푸르렀을, 허나 그 순간은 캄캄했을 뿐인, 가을 하늘 아래가 대화를 그리 만들었던 것이리라.

달력이 붉은 추석이 기다려진다곤 하나 그 마저도 슬픈 가을 하늘 아래에 있다. 가을에는 외로운 사람이 더 외로워지고 슬픈 사람이 더 슬퍼진다. 가을철 연인들의 서로가 더욱 돈독해지는 이유는 각자가 외로워 더욱 서로에 기대고 싶기 때문이리라. 스산한 가을 바람은 서럽진 않지만 슬프다. 그 가을 바람은 결국 점점 더 차가워지고 결국에는 겨울 바람으로 변할 것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가을이 가을이 아닌 더위와 추위를 잇는 길목으로 변해버린 지금, 마음이 황량해져 기댈 곳이 전무하게 느껴지는 지금, 이 가을의 높은 하늘은 나에게 아무런 위로가 되지 못하고 있다.
Posted by 심준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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