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운 사람'에 해당되는 글 9건

  1. 2010.02.07 고민하는 그대에게 1
  2. 2009.07.18 영혼에 좋은 거야.
  3. 2009.03.02 으하하하하 3
  4. 2009.02.02 저희 사무실 분위기가 좀 좋죠? 2
  5. 2009.01.16 "의미를 담고 싶거든."
  6. 2008.10.05 "그 사람 입장에서는" 6
  7. 2008.09.29 "인정?"
  8. 2008.08.30 "형 너무 민망해요."
  9. 2008.08.30 "잘 쓰긴 했는데.." 2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또 은연중에 그 중 몇몇 이들을 잊어가지만, 그 중 쉽사리 잊혀지지 않는 이들은 고민하는 이들이다. 사람을 오래 기억하기 좋은 방법 중 하나가 바로 그 사람의 내면을 만나보는 것인데, 누군가가 고민하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 자체가 내가 그의 내면과 얼핏이나마 조우했다는 것이니 말이다. 고민을 나누는 과정들이 모이면 대상을 알아감과 동시에 나를 전달할 수도 있다. 내가 잊지 않는 사람은 나를 잊지 않는다.

최근 만난 어떤 이는 지금 고민을 하고 있다. 그리고 아주 고맙게도 일부분 그 고민을 나에게 털어놓았다. 이십대 중반의 많은 이들이 고민하 듯 그도 미래를 고민하고 있었다. 다만 고민의 주제로 슬픈 이 세상의 많은 이들처럼 돈을 좇는 것이 아닌 자신을 찾아가고자 하는 것을 두고 있었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많은 이들은 이 고민 대신에 안정적인 직장을 찾는 것에 많은 노력을 기한다. 나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보다 가치있는 것이 자신을 찾는 과정을 넘어서는 것이라는 말에 이의를 달 생각은 추오도 없다. 그리고 지금 그는 그 과정을 넘기 위해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고민의 시작은 믿었던 길의 배신에서 찾아온다. 그것의 크기는, 길이라 생각 했던 것과 함께한 시간이 깊을 수록 진해지는 허무에 비례한다. 길이라 생각했던 것을 발견한 이들은, 대부분이 그 길에 남들과 다른 재능을 보였을 것이며, 때문에 다른 길에 눈을 돌리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종종, 눈물로 포기한 그 길에 다시 돌아오는 이들이 '배운 것이 도둑질'이라 쓴 웃음 짓는 것은 이 때문이다. 다른 것은 도통 재미를 붙여본 적도, 힘내서 해본적도 없기 때문이다.

내 이야기의 주인공은 길이라 생각했던 것에 질려버린 이다. 청소년기가 끝날 무렵 후회를 하기 시작하여 길을 접다, 그야말로 배운것이 도둑질이라 판의 밥을 먹고 있다. 그러나 이제 그 판의 밥마저 지겹다. 마주한 현실에 이제는 지친 것이다. 그럼에도 그가 보여주는 결과물은 다소 청순하고 풋풋하며 일견 노련하기까지 하다. 나는 아직 그가 보여준 것을 많이 보지 못했지만 단 하나를 보아도 알 수 있다. 내가 본 그의 결과물은 그의 일적인 글인데, 그의 자평인 '초보'와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았다. 쉬우면서 동시에 속도감있는 문장이 풀어내는 전문적인 미술 지식은 미술에 대한 앎이 전무한 나에게 한 작가가 미술품을 도구 삼아 청자에게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지 정확하게 전달했다. 일로 때로 취미로 글을 쓰는 나이기에 그것이 매우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가 쓴 글들을 보고 나는 대번에, '무엇을 해도 잘할 사람이로구나.' 라고 생각했다.

그만한 능력이 있는 이가 어디 없겠는가. 그보다 나은 능력을 지닌 이가 세상 어딘가에, 나와 가까운 곳에 있을는지 모른다. 그럼에도 그가 보석처럼 빛나는 인재임을 추측하는 것에 인색할 이유가 없는 것은 그가 보여주는 걸쭉한 인간다움과 여린 가운데의 단단함에 있다. 그리고 겸손함에 있다.

그의 인간적임은 항상 나에게 교훈이 되곤 한다. 나는 그가 다른 이를 폄하한 적을 본 적이 없다. 그는 그 외의 모두를 높이며, 존중한다. 표현하는 것에 대한 가치를 전적으로 인정하며, 특히 사랑의 표현을 최고로 둔다. 그와 알게 된 시간은 간단한 손계산 만으로 가늠될 만큼 짧으나 나는 그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를 예측한다. 그는 그렇게 찰진 인간다움을 유지하며 부단히 살아왔을 것이며 그리 살아갈 것이다.

마른 몸을 이끌고 하루 하루를 살아가지만 힘든 내색하지 않는 그다. 내 한몸 건사하기 어려운 세상에 누가 누굴더러 대견하다 하겠냐만은, 그럼에도 나의 건방짐을 무릅쓰고 그는 대견하다. 작은 체구가 감당하지 못할 일들을 해낸다. 흙과 나무와 철을 섞어 만든 로봇이 아닌 살과 피와 혼이 어우러진 사람이기에 힘듦이 삐져 나올 때가 있지만, 그때 뿐이다. 칭얼대지 않는다. 나는 그토록 여린 가운데 그만큼 견고한 이를 만난 것이다. 그의 그러한 성품은 나의 가치관에 영향을 주기에도 충분하여 어린 나를 단련 시킨다. 쉽게 말해 배울만하다.

그는 앞서 말한 대로 스스로를 '초보'라 칭한다. 나는 내가 일하는 이 '판'에서 그처럼 겸손한 이를 본 적이 없다. 아니, 능력을 가진 채 겸손한 이를 본 적이 없다. 종종 마음에 들지 않거나, 아쉬운 이들을 볼 때가 있는데 그들은 셋에 하나다. 능력이 있지만 능력에 자만하거나, 능력도 없는데 자만하거나, 능력 없이 겸손하다. 어느 것이든 아쉬운데 특히나 이 '판'에 그런 이들이 많다. 허나 그는 다르다. 언급한 대로 그는 이런 저런 구성진 결과물을 보여주지만 그것에 못 미치는 그의 자평은 누군가의 정확하고 송곳같은 평가를 필요로 한다. 날카로운 그 평가는 반드시 그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어 줄 것이다.

누군가 아무개는 그에게 자신감을 가지라며, 자신감만 있다면 얼마든지 해낼 수 있다고 충고한다 들었다. 하지만 나는 자신감의 강요가 짐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짧게 만난 나의 추측에 의하면 그는 늘 그의 겸손과 싸워왔다. 자신의 눈으로 보기에 일구어놓은 모든 것이 모자라 보이기에 더욱 섬세하게 결과물을 제련해왔다. 그런 그에게 강요해야할 것은 자신감이 아니다. 그보다는 그가 보여주는 그리고 보여줄 결과물에 대한 적확한 평가가 그를 위할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적확한 평가가 가녀린 새를 겨누는 새총 같은 것이 아님은 두 말 할 것도 없다. 그는 이십대 중반의 청년이다. 한눈 팔지 않고 십수년 한 걸음을 걸어오다 어느 순간 마음이 휘청한 그다. 꿈 많았던 소녀는 노란 얼굴의 어른들을 만나며 휘청인다. 이제서야 청년이 되었는데, 사회는 그에게 많은 것을 기대한다. 그런 그에게 나는 도저히 자신감을 가지란 말은 하지 않으련다. 정확히 평하여 그에게 자신감이 스미도록 도우련다.

실은 내가 평하지 않더라도 빛나는 그다. 하지만 별이 스스로 빛나는 것이 아니며 때문에 별 스스로가 스스로의 빛남을 알지 못하듯이, 그 역시 그가 얼마나 빛나는 이인지 알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때문에 나는 작게나마 그를 빛내고자 한다. 이처럼 그가 얼마나 빛나는지 공간을 통해 역설하고자 한다. 인간적이고 여리며 그 중 강하고 겸손한 그는 지금 기로에 놓여 있다. 판을 벗어날지, 판에 머물지 고민하고 있다. 어느 곳에 있든 그가 빛나지 않을 소냐. 지금처럼 반짝이는 그의 눈이 흐릿해지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언제나처럼 그가 번뜩이길 희망하고 기도하며, 내가 그의 성장과 유지에 한 손 거들 수 있기를 바란다. 용의 눈에 칠흙 같은 눈동자를 그려버린 나머지 그가 날아가버리지 않기를 비겁히 기도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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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우형은, 아니 영우형의 존재는 아주 가공할 정도로 무서운 사건이 있었기 때문에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내가 비더스에서 C/S일을 도와주고 있을 때였는데, 당시 무신사 일과 비더스 일을 동시에 하는 바람에 업무에 과부하(지금 하는 수준에 비하면 새발의 적혈구 정도지만)가 걸려 있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전화를 매우 싹앗즤없게 일본으로 떠넘기고 있던 시절이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걸려온 전화를 일본으로 싹앗즤없게 넘기고 있었는데, 대웅이형이 놀러왔다. "나 아는 동생이 여기서 물건을 샀는데 넘후 싹앗즤가 없어서 야구 배트로 머리통을 깨버린다는데 누구야?" 왠지 겁주는게 아니고 정말로 머리통이 없어져서 부모님께 불효를 하게 될 것같은 생각이 들었던 나는 즉시 대웅이형의 아는 동생분에게 사과 전화를 드렸고 사건은 일단락 되었다. 그러니까 그때는 영우형을 그냥 대웅이 형이 아는 동생 중에서도 특급으로 무서운 형이라는 존재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영우형과 킥스 도쿄 파티에서 만나서 직접 사과도 드리고 웃으면서 악수도 하고, 그 이후로 푸마 컨텐츠때 영우형이 도와주게 되어 촬영도 하고, 또 비더스 일 모르는게 있을 때 직접 물어보기도 해서 조금씩 친분이 쌓여있었지만, 난 영우형이 참으로 무서웠다. 언제 머리통이 날아갈지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첫인상이 없는 나지만 첫만남이란 그렇게 무섭다.

얼마 전에 무신사닷컴 컨텐츠로 영우형을 인터뷰했다. 사실 이 인터뷰는 반년 정도 전에 기획된 인터뷰인데 내가 게으르고 바쁘다는 핑계를 잘 대는 성격인 지라 지금까지 미뤄져 왔는데 영우형은 흔쾌히 받아주었다.

묘한 선입견인지 사실 정말 그런건지 모르겠지만 나는 몸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사람은 말로 자신을 표현하는 데에 서투를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 수많은 춤꾼들이 전부 스타가 되지는 못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스타는 실력과 동시에 남에게 그 실력을 전달할 수 있는 입담이 있어야 한다고 늘 생각해왔다. 영우형은 이제 특급 댄서다. 그것도 메이저 가수들과 방송, 뮤직비디오에서 단골로 찾는 특급 댄서다. 크럼프 댄스라는 장르에선 한국 최고의 위치를 지키고 있다.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런 그는 자신이 살아온 과정, 춤이라는 것을 추게 된 이유, 지금의 삶, 앞으로의 미래에 대해서 완벽하게 완성된 스토리를 갖고 있었고 그 스토리를 나에게 한치의 망설임 없이 들려주었다. 김구라가 룰라의 김지현에게 라디오 스타에서 말했다. "김지현씨가 말을 좀 더 잘했더라면 아마 인기가 2배는 많았을 겁니다." 당대 최고의 스타 룰라의 섹시 디바 김지현은 말을 못해서 누릴 수 있던 인기의 반밖에 누리지 못했다. 김지현이 말을 좀 더 잘했더라면 바 차려놓고 망하게 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영우형은 자신이 왜 스타가 되어야 하는지, 남들이 왜 자신을 필요로 하는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몇몇 연예인들과 인터뷰도 해보았지만, 스타를 만난 기분이 드는 것은 이번 인터뷰 때가 처음이었다. 1년 전부터 알고 있던 형이 내 안에서 스타가 되기 시작했다. 역시, 첫인상은 아무 것도 아닌 것이다.


"나는 내 학생들에게 항상 준비해놓으라고 가르쳐.
10년 동안 일이 없어도 난 계속 춤연습 할거야."


 

평생 춤추고자 하는 춤꾼, 크럼퍼 영우형에게



 

Posted by 심준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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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하하하하

고마운 사람 2009. 3. 2. 21:29
때는 무신사에 처음으로 들어와서 파티남도 되보고 좀 주변에서 깐족 거릴 때였다. 신나게 놀고 있는데 어떤 사내가 '선두'하면서 내 입에 포도맛 캬라멜을 넣어주었다. 함께 이상한 춤을 추면서 은근히 돈독해졌다. 그 뒤로 두번정도 더갔는데 갔을 때마다 그 사내 덕분에 더 재밌었던 것 같다. 그러고 보면 그 사내는 거침없이 잘 놀았다. 나는 그 덕분에 '거침없는 척'도 할 수 있었고, '잘 노는 척'도 할 수 있었다. 왠지 같이 있으면 되게 편했다. 호랑이 무등을 탄 여우라고 하면 뭐하겠지만, 얼핏 나보다 형인것도 같아 좋은 형이 되었으면 했다.

B7의 화보를 찍는데 자전거 동호인들이 필요한 화보였다. 대뜸 그를 찾았다. 메일보내고 약속을 잡았다. 섭외할 때 사람은 참 얄미워진다. 조금만 친해도 거기에 기댄다. 심지어 난 캬라멜 하나 얻어먹고 춤한번 춘사이인 그에게 알랑거리며 섭외를 성공시켰다. 그날 내가 그에게 시킨 고생은 정말 개고생이었다. 한여름에는 그냥 한여름이 있고 '개 같은'한여름이 있는데 내가 그에게 개고생 시킨날은 바로 그 개 같은 한여름날이었다. 그 여름날 나는 옷을 몇겹씩 껴입게 하고 자전거를 '존나게'타게 시켰다. 근데 그가 이렇게 말했다. "고생해도 괜찮아요. 잡지가 우선 잘나와야 되니까." 아, 짧은 연으로 섭외한 그는 군자였다.

인간적으로 친해질 수 있던 그를 일적으로 먼저 만나고자 수작부린 나에게 그는 함께 놀면서 돈버는 찬스를 잡아볼 생각없냐며 권유했다. 함께 하기로 한 나는 홍대의 모 클럽에 갔다. 생일 다음날 이었다. 그는 그 클럽 안에서 초코파이에 초를 꼽고 모든 이들과 함께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주었다. 다섯손가락 안에 끼는 횟수의 만남을 가졌던 그가 내 생일을 축하해주었다. 작년 내 생일을 함께 한 이들은 두명이었다. 뭐하고 살았나 조금 서글펐는데 그가 다음날 수십명의 축하를 선물했다. 아직도 기억난다. 그가 미스터 사탄 가발을 쓰고 초에 불을 붙여준 그날이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떠올릴 때 그의 거대한 근육과 자전거 그리고 FAC를 함께 떠올리겠지만 난 2008년 9월 21일을 떠올리겠다. 정말 2008년에는 그날이 내 생일같았다.



"뽀뽀"
형 이건 좀..


언제까지나 알고 지내고 싶은 정부랄, 정보람 형에게
Posted by 심준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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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난 날이 종종 떠오른다. 굉장히 머쓱했던 바로 그 날 말이다. 그날은 내 자식같은 잡지 브로큰세븐이 창간되어, 처음으로 잡지를 들고 집에 가던 날이었고 간만에 친구들을 만나서 사케를 한잔 기울인 날이었다.

술을 한잔 마시고 버스를 타러 가는데 같이가던 친구 중 한명이 지인을 만났다. 아주 잘생긴 그 청년은 나와 멋쩍게 인사했고 서로 자신의 소개를 할 때 난 그의 이름이 낯설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서울에서 잡지를 만드는 편집장 중에서 단 두 명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 동갑내기(다른 한명은 브로큰세븐의 임상훈편집장). 크레커의 장석종 편집장은 그렇게 처음 만나게 되었다.

목소리 좋고 이목구비 훤칠하고 게다가 키도 큰 이 비주얼 좋은 남자를 두번째로 본 것은 vol.1의 인터뷰 때였다. 처음에 인터뷰 섭외를 위해 친구에게 폰번호를 알아내서 무작정 전화했을 때 그는 한 수 위의 겸양을 보이며 거절했다. 두 번째 전화했을 때는 조금 누그러진 겸손을 보였고 세 번째 전화하니 흔쾌했다. 그리곤 만나서 그 누구보다도 적극적으로 취재에 임했고 압구정 도로 한복판 위의, 그러니까 유작이 될지도 모르는 촬영에도 웃으며 응해주었다. 유작이야 우스개소리지만 사람 많은 압구정에서 차가 많이 안다닌다곤 하지만 중앙선에 서서 몇컷씩 찍는 것은 찍혀보지 않아도 가늠할 정도로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런 그를 오늘 또 만났다. 일전엔, 한사코 창피하다며 보여주지 않던 바로 그의 사무실에서 또 그를 만났다. 이쯤되면 나도 뭐라고 하나 들고 가서 고맙다는 말을 했어야 되는데 얄궂은 내 건망증이 그마저 허락치 않았다. 빈손으로 찾아간 나를 버선발로 맞이한 그는 여전히 밝은 목소리로 나를 사무실로 안내했다. 방금 나온 크레커 16호는 여러 명의 손에 의해서 한권씩 포장되어가고 있었고, 포장 중인 그들은 스스럼없이 그를 대했다. 너무나 편안해 보였고 즐거워보였다. 그도 즐거워보였다. 즐거운 공기가 그 안에 흐르고 있었고 벽에 묻어 있었고 넘친 나머지 바닥에 흘려져 있었다. 하긴, 한국에 단 하나 뿐인 세계의 거리를 담은 잡지 크래커. 그 잡지를 만드는데 그 정도도 안신날리가 없겠다 싶다. 간만에 나보다 신나게 일하는 이들을 보니 어리둥절했다. 언젠가는 내가 그를 도울 날이 오겠지. 그때 그가 볼 내 모습이 그들만큼 신나보였으면 좋겠다.


"아, 저 웃는 모습 진짜 바보같아요. 그쵸?"

.. 잘생겼다니까요..



무심결에 찾아가도 좋은 선물만 주는 크레커의 장석종 편집장에게
Posted by 심준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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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남이형을 처음으로 만난 것이 언젠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리 오래되지 않은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처음 함께 작업한 것이 언제인지는 정확하게 기억난다. 바로 BA의 무신사 룩북을 준비할 때가 그때다.

여러 브랜드의 디렉터들이나 디자이너들과 함께 작업을 하고 기사를 만들어나갔지만 BA와는 처음이었다. 소스와 제품을 넘겨받고 리뷰하거나 브랜드 소개를 하는 것과는 또 달랐다.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는 것이 썩 신기했다. 그러니까 아쉽게도 이것이 내가 브랜드의 디렉터와 함께한 '첫 번째 창조적인 작업'이었기 때문이다. 이전까지는 그리고 그 이후로도, 소스를 받고 그 이후로는 무신사가 알아서 진행했을 뿐이다. 무언가를 함께 한건 근남이형과 한 것이 최초다.

근남이형이 디렉팅하는 BA의 작업을 하면 늘 감탄이다. 단지 옷이 좋다 이런걸 떠나서 이미지 메이킹이나 에프터 케어 등의 세세한 배려까지도 감탄의 대상이다. 근남이 형이 만드는 것은 옷이 아니다. 브랜드다.

때문에 BA와의 작업은 늘 신이 난다. 늘 어떤 방향으로 당신이 만든 제품이 보여졌으면 좋겠고 그 제품에 어떤 의미를 담았는지를 굳이 내가 작업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자세하게 적어준다. 제품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아도 즐겁게 그 글을 읽고나면 기사는 자연스럽게 손끝에서 뻗어나온다. 이야기 한번 나누고 집에오는 버스안에서 기사는 완성된다.

집중해서 만들고 싶은 생각이 드는 기사는 역설적으로 그렇게 만들기 쉽다. BA와의 근남이 형과의 작업이 그렇다.

"보내주기로 한거 내일 보내줄게. 의미를 좀 담아보고 싶거든"


옷이 아닌 브랜드를 만드는 BA의 옥근남 디렉터에게
Posted by 심준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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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3월말이었다. 누가 정했는지 모를 계절의 정의가 심각하게 미약해진 2008년인지라 날짜가 날짜였음에도 불구하고 많이도 추웠다. 그때 나는 처음 입사하여 동서 구분이 안되는 어리버리한 녀석이었다. 그런데 한 사람을 만났다. 말이 참 없어보였다. 같이 일하게 된 것 같아 친해지고 싶어서 이렇게 말했다. '말 편하게 해요'그럼에도 그는 이렇게 말했다. '~씨라고 불러요'

함께 일을 하는데 1년이나 한 잡지를 이끌었던 사람이었어서 그런지 전화하고 받고부터가 달랐다. 두서없이 좀 '좋아'보였다. 하루는 퇴근을 했는데 사장님이 전화를 했다. '준섭아. 많이 배워.' 그럴셈이었고 생각대로 말했다. 그리고 사장님도 말한적이 없고 그가 말한적도 없는데 '편집장님'이라고 불렀다. 생각해보면 편집장과 말을 놓으려고 했던 나도 대단한 녀석이다. 하긴 인간 심준섭, 군대있을 때 부터 개념없는거 하나는 알아줬다.

그는 내 글을 독자가 가장 잘 읽을 수 있는 형태로 만들어줬다. 글의 내용은 자음 모음하나 바뀐 것이 없는데 내가 썼을 때랑 달랐다. 그는 그렇게 나의 스케치위에 색을 입혔다. 고흐의 빨강이었고 모네의 노랑이었다.

그가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다. "그러니까 그 사람 입장에서도" 그는 입버릇처럼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한다. 그의 배려는 버릇이다. 그것도 10년된 간장종지에 베인 검정물같은 깊은 버릇이다. 그토록 그는 배울것이 많았다. 아니, 많다. 그는 지금도 현재형으로 내 곁에 있으니까 말이다. 언젠가 그가 말했다.

'저는 준섭씨한테도 많이 배워요.'

나 같은 것에게 배운다니, 그의 겸양은 이제 일수를 이룬것 같다. 그래서 늘 고맙다.

만나서 다행인, 임상훈 편집장님에게

Posted by 심준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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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

고마운 사람 2008. 9. 29. 17:54
내가 어릴 때 글 쓰는 것을 좋아했던 것은 아니다. 어릴 적에 누구나 받는 글짓기(논술이 아니다.) 레슨을 받은 적은 있지만 악필 중에 상 악필이라는 이유로 글씨 쓰는 것을 싫어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글도 자주 쓰지 않았다. 그 흔한 일기도 쓰지 않았다. 그런 내가 글을 조금씩 쓰기 시작한 것은 인터넷을 통해서였다. 온라인 게임 사이트에서 활동하고 내 홈페이지도 만들고 급기야는 딴지일보에서 본 글귀들을 인용해서 허접한 논설을 펼치지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비문 투성이에 기승전결이 꼬이는 글이지만 그때는 나름 진지했다. 난 내가 글을 잘 쓰는줄 알았기 때문이다. 고려대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봤던 논술 시험에서, 그토록 자신 있어 하던 내 글솜씨가 가뜩이나 희박했던 합격 가능성을 아예 쌔까맣게 만들어놓은 결과를 선물한 바람에, 그것의 저렴한 척도를 증명해주기 전까지 말이다. 누굴 탓하겠는가. 날 탓해야지. 난 글 잘쓰는 사람은 아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한 형이 나에게 모 편집매장 리뷰를 한번 써달라고 부탁을 한 적이 있다. 그때 나름대로 내 리뷰가 올라가는 사이트에 대한 애착도 있었기 때문에 신경을 써서 썼었는데 형은 읽어보고 '괜찮네, 글 좀 쓰네'라고 말했다.

3년 정도 뒤에 그 형이 그때 한번 본 내 글솜씨를 믿고 날 자기 회사에 취직시켜주었다. 다름 아닌 국내 최대 패션 포탈 사이트 무신사 닷컴, 그리고 앞으로 최고가 될 패션 라이프 스타일 매거진 브로큰세븐 매거진으로. 나는 아직 최대가 아니고 최고도 아니다. 하지만 날 믿고 내가 글을 쓰는 대신 월급을 쥐어주는 이 형 때문에라도 나는 최대이자 최고가 되어야 한다.

"야 씨발, 그거 형이 다 뼈대 잡아준거 니가 살만 붙힌거잖아. 인정?"


형이자 날 직원으로 쓰고 있는 그레이큐브의 조만호 대표님에게
Posted by 심준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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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한 그라면 아마형 저런 건 너무 민망해요.”라고 말할지도 모르겠지만 이번만큼은 그의 부끄러운 의사를 좀 묵살해야겠다.

그가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는 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이미 B7사무실의 슈퍼스타다. 우연한 기회에 그의 실력을 본 편집장님도, 일러스트가 좀 있으면 좋을 것 같다고 가끔 말할 때가 있던 편집 디자이너도 모두들 그의 팬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의 팬이 된 이유는 각각 다르다. 편집장님은 말도 안 되게 적은 시간만을 허용해도 칼같이 결과물을 보내주는 책임감 때문에 그를 좋아하고, 편집 디자이너는 일러스트를 그린 이의 자존심이 있을 것임에도, 의견 조율을 통해 일러스트에 변화를 가할 수 있도록 허용해주는 아량을 가진 그를 좋아한다.
 
하지만, 책임감 있고 아량 있는 그라도 실력이 없다면 우리가 좋아할 수 있었을까? 생각해보니, 그냥 참 잘해서 좋아한다고 말해도 지장 없겠다. 참 잘해줘서 참 고맙다.

최고의 일러스트를 브로큰세븐 매거진에 선물해준 류희룡에게
Posted by 심준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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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면서 월급을 받는 직업임에도 불구하고 글에 대한 자신이 없었다. 이것은 글을 잘 쓰고 못 쓰고를 떠난 문제다. 낯뜨겁게도 ‘띄어쓰기’를 비롯한 기본에 관한 문제다.

오문이 두려운 나머지 문명을 이용했다. 문서 편집기의 붉은 밑줄부터 모두 피했다. 그것만으로는 못미더워 결국 한 웹사이트의 2008 4 15일자로 업데이트가 되어있는 교정기를 통해 글을 정제했다. 하지만 읽어주는 사람 없는 차가운 프로그램들은 전부 2% 부족했다.

문득 출판사에서 교정을 보는 일을 하는 친구가 떠올랐다. 오래도록 연락하지 않았던 그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야속하게 생각했을 것이 분명함에도 반겨주었다. 쌓여있는 업무에 못 이겨 용건만 거두절미해버렸다. ‘내 글, 교정 좀 봐주라. 밥 사줄게.’ 껄껄 웃더니 메신저로 흔쾌히 문서 파일을 받아주었다.

‘잘 쓰긴 했는데’라는 위로 문구로 시작한 글은 붉은 색 교정 문구에 의하여 ‘피칠갑’이 되어 있었다. 문서 위에 그 친구의 멋쩍은 얼굴이 아른거렸다. 송곳 같은 날카로움이 차가운 프로그램 조차 생각하지 못한 헛점을 잡아냈다. 그로 인해 우리의 글이 더 나은 글이 되었음은 말할 필요도 이유도 없다. 이런 말을 하고 싶다.
 

“채송화, 고맙다. 다음에 부탁해!

바쁜 와중에도 나와 이문지 에디터의 글을 교정봐준 채송화에게

Posted by 심준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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