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입는 옷 중에서, 절대로 ‘패션 아이템’이라는 호칭을 받을 수 없는 것은 무엇일까? 아무래도 밖에서 보이지 않는 것들 중에 정답이 있겠다. 그렇다면 속옷? 아니 될 말. 여성들에게는 이미 옛날 옛적부터 패션아이템이었고, 남성들 역시 바지 위로 살짝 보이는 속옷 로고 등에 신경 쓰게 된지 꽤나 지났으니 속옷은 패션 아이템이라고 불러도 괜찮겠다.
양말? 검정양복에 검정양말을 신는 정도의 ‘매너’가 양말의 가치 그 전부이던 시대는 지났다. 다양한 패턴의 패션 양말들이 이제 각종 브랜드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으며, 바지를 롤업하면 얼마나 예쁜지 깨달아버린 지금은 더더욱 큰 주목을 받고 있다. 그러니까 양말도 패션아이템이라고 부르면 별 문제 없을 것 같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것은 ‘내복’이다. 그렇다. 내복이야말로 절대로 패션아이템이라고 할 수 없는, 오히려 몸의 라인을 둔하게 만들어 스타일을 해치는, 그런 옷이다. 겨울철, 내복을 입으면 아주 따뜻하며, 덩달아 실내온도를 낮출 수 있고, 나아가 지구 온난화 현상을 늦출 수 있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왠지’ 입기 꺼려질 때가 많다. 고로 내복은 패션 아이템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죽도록 추운 날, 입기도 안 입기도 거시기한 ‘계륵’같은 존재다.
하지만 지구에 있는 모든 내복이 닭갈비 취급을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작년에 태어난 어떤 내복은 ‘내복도 입을 만하다.’ 라는 인식을 넘어, ‘아, 이 옷 참 예쁘다.’라는 경탄까지 불러왔다. 그 내복 입기 꺼려하는 한국에서 지난 겨울, 18만장의 판매고를 올린 유니클로의 히트택이 그 주인공. 그 히트택이 2009년 겨울, 더욱 다양한 종류와 색상을 들고 찾아왔고 그 자신이 패션아이템을 증명하기 위하여 ‘패션 쇼’까지 열었다. 그 현장에 무신사 매거진이 다녀왔다.
기존의 벙벙한 내복과는 다르게 슬림하면서도 흡수 및 발열 성능이 뛰어난 형태로 작년 한해 다양한 연령대의 소비자들에게 무진 사랑을 받았던 히트택. 대부분의 내복들과 마찬가지로 히트택 역시 ‘스타일’적인 면을 많이 강조했는데, 오직 히트택만이 말뿐이 아니었던 것인지 작년 한해 다양한 스타일링에 이용되었다. 그리고 그 다양한 스타일은 올해 더욱 진화하게 되었고, 결국 11월 26일 히트택을 활용한 프레스 프레젠테이션 패션쇼가 청담동 도산공원 사거리의 호림 아트센터에서 열렸다.
쇼의 컨셉은 비즈니스, 캐주얼, 스포츠 세 가지였다. 각 컨셉에 맞게 스타일링된 히트택은, 더 이상 이것이 ‘내복’에 머물지 않음을 강조했다. 모두가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케주얼 스타일부터 도시적인 감성의 오피스 룩까지 거침없이 연출해낸 쇼는 찬사를 받기에 부족함이 없는 그것이었다. 또한 한켠에는 쇼룸을 마련해두어 쇼가 끝난 뒤에 다시 한번 패션과 히트택의 앙상블을 되새길 수 있도록 도왔다.
한 브랜드에 있어서, 또는 한 아이템에 있어서 의미의 부여는 브랜드 그 자신에게 달려있다. 유니클로의 히트택 역시 마찬가지다. 기능성 내복을 만들었지만 그것이 내복 이상을 추구한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그렇게 정의 내려야 하며 또한 그것을 많은 이들에게 알려야 한다. 껍데기뿐만 아닌 알맹이도 함께 해야 함은 물론이다. 유니클로는 히트택을 단순한 내복 그 이상의 존재로 정의하기 위하여 실제로 이것이 스타일링이 가능한 것임을 가장 적절하고 효과적인 방법으로 증명했다. 히트택에 대한 큰 관심만큼이나 많은 프레스들이 모였고, 따라서 많은 매체들에 소개될 본 프레젠테이션 패션쇼가 히트택을 포함한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내복을 모조리 못 믿고 있는 극 소수의 이들마저 설득할 수 있을까? 질문에 대한 응답은 유니클로가 알겠지만 에디터는 YES에 한 표를 던지겠다.
'무신사컨텐츠'에 해당되는 글 3건
- 2009.12.12 Heattech Fashion Show
- 2009.07.31 [인터뷰]실력, 입담, 사상 모든 것이 강력한, 괴물 같은 댄서, Monster Woo
- 2009.06.03 Brownbreath, 홍대의 갈색 숨결 3
The Monster
실력, 입담, 사상 모든 것이 강력한, 괴물 같은 댄서, Monster Woo
에디터가 중학생 때는 마룻바닥을 몸으로 쓸고 다니는 브레이크 댄스가 유행이었고, 조금 지나자 춤추는 이의 관절 구조가 의심되는 파핀이 유행이었다. 둘의 공통점은 아주 멋졌다는 것. 그런데 지금, 가장 주목 받고 있는 춤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KRUMP다. 무대를 부숴버릴 것만 같은 박력, 보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가 날아가버리는 후련함 정도로 설명되는 이 크럼프 댄스하면 거의 동시에 떠오르는 한 남자를 만났다. 지금까지 보아왔던 호리호리한 댄서들과 다르게 매우 큰 그는, 자세하게 크럼프 댄스에 대해 설명해주었고, 그의 과거에 대해 설명해 주었으며, 어떤 여자가 이상형인지 설명해주었다. 한국에서 가장 크럼프를 잘 추는, 가장 크럼프와 잘 어울리는 남자, 김영우, 김영우 나이트댄스 말고, Monster Woo를 무신사 회원들에게 소개한다.
Introduce
Monster Woo 그에 대한 이야기
안녕하세요. 저희는 무신사닷컴이라고 합니다. 간단한 소개를 부탁 드릴게요.
나이는 29살이고 이름은 김영우 입니다. 김영우 나이트댄스 말고, 크럼프 댄서 Monster Woo라고 합니다(이하 존칭 생략).
본명보다는 Monster Woo라는 예명이 훨씬 익숙하다. 직접 지은 이름인가?
아니, 춤추기 전부터 사람들이 몬스터, 괴물 이렇게 많이 불러서 쓰게 되었지. 예전부터 지금까지 계속 사용하고 있다.
당신도 유명하지만 당신이 추는 크럼프 댄스도 많이 유명해졌다. 크럼프 댄스는 대체 무엇인가?
크럼프 댄스는 ‘Tight Eyez’라는 댄서가 1999년에 만들었는데, ‘Kingdom Radically Uplifed Mighty Praise’의 약자로 신에 대한 찬양을 주제로 한 춤이다. 전 세계에 있는 크럼퍼들이 그 사람을 따르지. 그 사람은 지금 기독고 목사인데, 그 사람의 종교까지 강요하지는 않는다. 나처럼 종교가 없는 사람들은 두 가지를 위해서 춤을 추는데 하나는 내 안에 있는 부정적인 감정이나 에너지를 긍정의 것으로 바꾸어 주는 것이다. 또 하나는 원래 크럼프의 의미와 비슷한 신에 대한 찬양인데, 나는 기독교는 아니지만 하나님의 존재를 믿고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떨지 모르겠는데 나는 정말 이 춤을 알게 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아마 이 춤이 없었더라면 난 나쁜 짓을 더 많이 하고 살았을 것이다. 보통 사람들이 스트레스를 받거나 화가 나면 술을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거나, 외국 같으면 심한 경우 마약을 하거나 하는데 나나 다른 크럼퍼들은 이 춤으로 대부분 풀어낸다. 아니, 전부를 푼다.
사람에게 상당히 이로운 춤인 것 같다.
그렇지. 사람 영혼에 정말 좋은 춤이다. 춤을 몸으로 겪는 것 이외에도, 이 춤을 추는 것을 보는 것 만으로도 스트레스가 풀린다는 사람이 있을 정도니까. 왜 음악을 들을 때도 속이 후련해지는 음악이 있지 않나. 다이나믹 듀오의 다시 쓰는 이력서 같은 노래를 들으면 왠지 내 얘기를 대신 해주는 것 같기도 하고. 이 춤도 그런 면이 있는 것 같다.
당신에 대해서 소개할 것이 너무나 많다. 크럼프 댄스 크루 Woofam을 운영하고 있는데 우팸에 대한소개도 부탁하자.
Woofam은 내가 2년 전에 만든 크루다. 원래 나는 춤을 혼자 췄었는데, 크럼프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서 그 중에 실력 있는 친구들과 크루를 만들어 활동하게 되었다. 나 Monster Woo와 Krump Angel, Youngster, Bucky, Baby Woo, Jr. Woo, Trix A.K.A Baby Monster, L.B, Boram, Jin, Boy X, Sic, 2Face, Lil Monster, Giant 이렇게 15명이 그 크루의 인원이다. 몇 명은 지금 참여 못하는 친구도 있고 모델 활동하는 친구들도 있고 연기활동 하는 친구들도 있어서 공연 무대에 자주 서는 친구들은 한 8명 정도 된다.
직접 발굴한 멤버들인가?
크럼프 댄스 레슨을 하고 있었는데, 처음에 Bucky라는 친구와 Youngster라는 친구가 있었다. 지혜랑 대남인데, 그 친구들을 레슨하면서 어마어마한 가능성을 보게 되었다. 내 자신을 보는 것 같기도 했고. 이 친구들을 보면서 팀을 한번 만들어서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Life in USA
결코 순탄치 않았던 미국에서의 삶
미국에서 생활을 오래 한 것으로 알고 있다.
어릴 때 우리 집은 좀 엉망진창이었다. 아버지는 소위 말하는 건달이었고 나를 낳아준 어머니와 일찍이 이혼했지. 어머니는 내가 초등학교 1학년 때쯤 미국으로 가셨다. 난 아버지와 새어머니, 그리고 배다른 형제들과 같이 한 3년 살았는데 4학년 때 어머니가 미국에서 날 데리러 오셨다. 그때 내가 피닉스, 에리조나 그쪽 지방에 살았는데 학교 전체에 동양애가 나밖에 없었다. 그때 만해도 인종차별이 되게 심할 때였으니까 매일같이 싸웠지. 매일매일이 지옥 같았다. 어머니께서도 힘들어하셨지. 내가 맨날 누구 팼다고 전화 오고 그러니까.
그때도 지금처럼 덩치가 좋은 편이었나?
그랬다. 미국 애들보다도 더 컸던 것 같은데, 난 15살 때도 지금 이 덩치였다. 그 이후로 안 컸지만(웃음). 어머니가 안되겠다 싶으셨는지 캘리포니아의 LA쪽으로 이사를 갔다. 한국 교민들이 많으니까 좀 나아질까 싶어서 그러셨겠지만 역효과가 났다. 나처럼 세상에 불만 많은 꼬맹이들이 엄청 많았던 거지. 더 안 좋은 길로 많이 빠졌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정학을 맞아서 졸업식도 못 갔으니까. 중학교에 넘어가서도 마찬가지였고. 1학년에서 2학년 넘어갈 때쯤 내 친구들은 이미 마약팔고 총 파는 일을 하고 있었다. 나에게도 그런 제의가 들어왔지만 난 거절했다.
지금에 와서는 다행이지만 왜 거절했는지 알 수 있을까?
그냥 나는 그런 것 보다는 앞으로 뭐하고 살아가야 되나 하는 고민을 되게 많이 했었다. 어머니랑 둘이 사니까 집안 사정도 어려웠고. 고민 끝에 복싱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미국 사람들은 아파트에 보증금 내고 월세로 많이 사는데, 아파트를 보면 좋은 아파트든 아니든지 간에 다 운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그런데 내가 사는 아파트에 예전 올림픽 금메달 리스트의 트레이너가 살고 있더라. 동네에 매일 같이 복싱 연습하는 아저씨가 있는 정도로 생각했는데 대단한 사람이었던 거지. 그래서 그냥 그 사람한테 가서 복싱을 좀 알려달라고 그랬다. 그 분이 날 좀 귀엽게 봤던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내가 복싱에 좀 소질이 있었는지 좀 잘 했었다. 14살 때 체육관 어른들도 1, 2라운드에 KO시키고 그랬으니까. 그런데 집이 어려워서 복싱에 필요한 것들도 못 사고 그러다 보니 총 들고 다니면서 나쁜 짓도 많이 하고 그랬지. 15살 때는 복싱을 정말 잘하게 되어 진로를 정했지만 마음을 잡지 못하고 나쁜 짓을 너무 많이 했다. 그러다 보니 경찰에 잡히게 되었고 재판을 받게 되었는데, 본 재판에 앞서서 내가 어른인지 아이인지를 판별하는 재판을 먼저 하더라. 내가 덩치도, 생각하는 것도, 범죄 정도도 어린 아이의 수준이 아니었으니까. 그 재판에서 져서 어른 재판을 받게 되었고 처음에 49년 형을 선고 받았었다. 다행히 변호사가 일을 그나마 잘 처리해서 5년 형으로 줄어들었지만 결국 5년을 다 살고 나왔다. 감옥 생활을 하면서 딱 세가지만 했다. 운동하고 공부하고 싸움하고(웃음). 나중에 좀 오래 되니까 아무도 안 건드리긴 했지만.
그런걸 보고 짬이 찬다 그러나?
맞다. 완전히 대장이었지. 그때부터 공부를 정말 많이 했다. 감옥 들어가기 전까지 내가 영어를 잘 못했는데 안에서 완전히 마스터를 하고 나왔을 정도니까. 또 책을 정말 많이 읽었다. 내 계획은 출소해서 미국에서 복싱을 계속해서 올림픽에 나가고 나중에는 변호사가 되는 거였다. 사업을 해보거나. 그래서 그런 쪽으로 공부도 많이 했는데 출소하니 나보고 미국 시민권자가 아니라며 추방조치를 내리더라. 꼼짝없이 경찰 두 명을 달고 한국으로 왔지. 한국 땅에 버려진 거지.(웃음) 감옥에서 마지막 1년 남은 사람들은 그 안에서 일을 할 수가 있다. 1년 동안 일을 해서 30만원을 벌었는데, 그 30만원으로 한국에 와서 고시원에서 살았다. 어머니께서 보내주신 조금의 돈으로 생활을 했는데, 그때는 정말 하루 종일 일만 했다. 정말 아무 일이나 다 했지. 막일도 하고. 그러다 보니 꿈도 없어지고, 복싱이나 내 인생에 대한 자신감도 없어졌다. 하루 종일 일해야 되니까 복싱 연습도 못하잖아. 그때 나는 고시원이라는 곳에서 나가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너무 좁고 답답하니까. 1년 동안 진짜 열심히 일해서 지하 방으로 이사를 할 수 있었다. 그때 조금 여유가 생겨서 홍대의 NB(대표적인 힙합 클럽)에 처음 놀러 갔었다. 한 7~8년 전이니까 완전 옛날 NB지. 그때 깔리형이라는 형을 알게 됐는데, NB의 전체 매니저였다. 거의 대장이었지. 그런데 그 형도 나처럼 미국에서 감옥 생활하다가 한국으로 쫓겨난 형이었다. 덕분에 코드가 정말 잘 맞았지. 캘리포니아에서 와서 우리가 깔리형이라고 불렀는데, 그 형이 나를 데리고 살았다. 같이 살면서 NB에서 일도 하고 그러고 살았었다.
Dancer, Monster Woo
최고의 댄서 김영우, 그의 시작과 지금
그러다가 춤을 자연스럽게 접한 건가?
NB에서 이것저것 일을 했다. 청소도 하고 경호도 하고. 그때 NB사장님이 안무가셨는데, 지영하 사장님이라고, 나한테는 정말 의형제 같은 분이다. 지금도 그분 밑에 있고. 그런데 클럽에서 계속 음악이 나오니까 몸을 움직이게 되잖아. 그런데 그분께서 나보고 춤 감각이 좀 타고 난 것 같다고 말해주셨다. 리듬이나 그런 것들 말이지. 그때 나는 또 내 인생 뭐해야 되나 뭐 이런 고민을 하고 있었을 때였다. 평생 청소하고 경호하고 그럴 수는 없는 거 아닌가? 그런데 그 분께서 나에게 춤을 한번 춰보라고 권하시는 거다. 그런데 뭘 춰야 할지 몰랐다. 그 당시 프랜즈라는 팀의 연습실이 있어서 거길 나가봤는데, 재즈를 하는 팀이어서 재즈를 좀 익히고 그랬는데, 그 춤이 나랑 좀 안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좀 느리고 답답하고. 그래서 또 슬럼프가 왔다. 연습은 나름 한 것 같은데 잘 못 췄으니까. 뭘 춰야 할지도 모르겠고. 그래서 뮤직비디오를 보고 춤을 따라 해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춤이 좀 늘었다. 당시 클럽에는 댄서들이 많이 왔는데, 난 참 그 댄서들이 멋있어 보였다. 그러다 보니 댄서들이랑 친해지게 되었지. 내가 좀 아무래도 튀었으니까.
아무래도 좀 몸집이 커서 그랬겠지?
맞다. 그때는 지금보다 더 컸다. 그리고 완전 피부가 쌔까만색이었고 머리도 면도칼로 삭발했을 때니까. 청쪼끼 같은 거 입고. 팔도 막 우락부락하고, 팔 둘레가 18인치였으니 말 다했지.
18인치면 매우 마른 여자들의 허리 사이즈 아닌가.
(웃음)더 클지도. 댄서들은 처음에는 나를 무서워하다가도 친근하고 하니까 많이 친해지고 그랬다. 그때 크럼프 댄서 중 한 명이 한국에 왔었는데 NB에서 만났다. 그 사람이 크럼프 창시자의 파트너였다. 그 사람이 춤추는걸 봤는데, ‘와, 정말 이거다. 내가 이걸 해야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2004년도 때 일인데, 한 4~5년 됐는데, 그 사람에게 내가 이것 저것 물어봤다. 그런데 크럼프의 역사나 뭐 그런 것 들에 대해서 정말 친절하게 다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그 사람이 크럼프의 DVD를 가지고 있었는데, 많은 댄서들이 그 DVD를 원했지만 그 사람은 나에게 그 DVD를 주었다. 그 친구에게 정말 고맙지. 그 DVD를 가지고 매일, 매일 몇 시간씩 보고, 춰보고 하면서 연습했다. 크럼프의 창시자가 DVD를 몇 개 더 출시했는데 한 10개정도 사서 매일 같이 또 독학을 했다. 그러다 보니 지금에 이른 것 같다.
처음에는 어려운 것이 많았을 것 같다.
많았지. 일단 내 자신도 자신이지만 이 춤을 어떻게 알려야 하나라는 고민이 가장 컸다. 대회를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지. 클럽에서 만난 다른 댄서들과 조인해서 나갔는데, 그때 반응이 좀 좋았지. 와, 저거 뭐야? 뭐 이런 반응이었지. 그리고 댄스 배틀 대회에 나갔다. 7:7 프리스타일 대회였는데, 나는 리버스 크루라는 비보이 팀과 X-Tasy라는 팀에 껴서 같이 나가게 되었다. 심사위원들도 다 외국인들이고. 그때 1등을 했다. 함께 참여했던 그들과 잘 맞았던 것도 있었겠지. 한번은 1:1 배틀 대회에서 내가 준결승쯤에서 졌었다. 근데 나는 이긴 것 같았거든. 그때 뭔가, ‘아 이게 내 마음대로 되지 않을 수도 있겠구나. 내가 꿈꾸었던 대로 안될 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를 악물고 진짜 정말 열심히 연습했다. 연습도 연습이고, 다른 댄서들에게 이 춤을 많이 알리려고 노력했는데 다른 댄서들은 이 춤에 관심을 가지려고 하지 않았다. 이게 춤이냐는 사람들도 있었고 시기하는 사람들도 있었으니까. 내가 하는 춤은 좀 새로운 편이니까 좀 전해보려고 했는데 관심을 안보이고 그저 나를 배척한 거지. 그래서 그냥 나는 다 적으로 돌려버리기로 했다(웃음). 나는 좋게 다가가려고 했는데, 아무리 좋게 다가가도 이 댄서들이 나를 좋게 안받아주니까. 그래서 대회 나가서 완전히 뭉개 버렸다. 내가 졌을 때도 상대 댄서가 자기가 이겼는지, 졌는지 모를 정도였으니까. 그러면서 내가 점점 유명해지고, 나를 좋아하는 댄서들도 많아졌지. 지금 생각해보면 크럼프도 크럼픈데, 내 캐릭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기도 하다.
그렇지, 좀 파워 있고 그렇고, 또 당신은 굉장히 큰데, 댄서들은 대부분 마른 사람들이 많으니까.
맞다. 내가 다른 댄서에 비하면 엄청 큰 편이니까. 아무튼 그런 게 가장 어려웠지. 댄서들이 나를 배격하는 것들이.
하지만 등장하자마자 대회 우승도 자주 하고 그랬으니 춤추는 것에서 금전적으로 어렵거나 한 일은 없었겠다.
그런데 나는 돈은 아예 다른 일로 벌었다. 춤은 그냥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거지. 지금 같지 않았지. 돈은 일하면서 벌었고 내가 남는 시간에 계속 연습했던 거지. 내가 좋아서.
이어지는 질문인데, 댄서로 생활하시면서 수입적인 부분은 어떻게 해결하는 건가?
처음에는 춤 쪽으로는 크게 할 일이 없었지. 그때는 사람들이 날 배척할 때라서 날 안 부를라고 하고, 나에 대해서 아예 말을 꺼내지도 않을 때였으니까. 나를 아예 없는 사람으로 만들려고 했지. 덕분에 아무래 내가 잘 해도 춤 쪽으로는 일이 없었다. 그런데 자꾸 내가 대회에서 나오고, 또 우승하고, 자꾸 보이니까, 행사 열거나 하는 사람들은 나를 보게 되고 찾게 되었지. 그러면서 무대에도 많이 서게 되고. 그때부터 이런 저런 일도 많이 하게 되었다. 다른 사람 안무도 짜주게 되고. 그리고 나는 크럼프를 주로 추지만 다른 춤도 배워놨다. 팝핀, 락킹 같은 것들 말이지. 다른 춤이 필요하면 다른 춤도 출 수 있고 그렇게 몸이 뚫려 있으니까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다른 것을 원하면 그것 역시 만족을 시켜줄 수 있었지.
애초에 다른 춤도 같이 연습한 건가?
아니 처음에는 크럼프만 연습했는데, 크럼프를 하면서 몇 명 댄서들과 친해졌다. 오리지널리티 웅이라는 형이랑 팝핀DS랑, G-Haksu라는 형들이 나에게 손을 내밀었었지. 그 사람들에게 다른 장르의 춤을 많이 배웠다.
요즘엔 돈 잘 벌 것 같다.
지금이야, 여기 저기서 나를 부르고, 돈 나름대로 벌지. 돈을 많이 번다기 보다는 잘나간다는 회사원들보다는 잘 번다.(웃음) 무대에 많이 서고, 심사도 많이 보고, 또 공연도 하니까.
이건 준비된 질문은 아닌데 당신은 여러 가지 면에서 준비가 많이 되어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걸 보고 스타성이라고 하는지 모르겠지만 춤추는 사람 중에서 당신처럼 말 잘하는 사람이 또 있나 모르겠다.
보통 댄서들이 조금만 자신이 잘하면 마음을 놓을 때가 많다. 자기 포지션에 편해지면 자신들이 발전이 없는 거지. 춤으로도 자신으로도 그렇고. 나는 내 팀원들에게 항상 가르치는 것이 항상 준비되어 있으라는 건데, 내가 공연이 1년 동안 없을 수도 있고 10년 동안 일이 없을 수도 있지만 난 매일같이 춤을 출거거든. 준비도 해야 되겠지만 무엇보다 내가 춤을 좋아하니까. 그러려면 이 춤에 대해서 잘 알릴 수 있어야 되고 역사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어야 된다. 몸으로도 보여줄 수 있어야 되지만 입으로도 설명할 수 있어야지.
With Major Artist
메이저 아티스트와의 작업들
그런 것이 참 잘되어 있는 것 같다. 글 쓰는 사람입장에서도 당신 같은 사람이 편하다. 말을 짧게 해주시는 분들과 인터뷰 하고 나면 분량이 딸려서 소설이라도 써야 할 판인데 오늘은 그럴 일이 전혀 없을 것 같다.(웃음) 다음 질문인데, 당신은 원래 이런 댄스 동호인이나 프로 댄서들 사이에서는 대단히 유명하지만 얼마 전 빅뱅의 G Dragon이나 업타운 등의 메이저 가수들과 공연을 하면서 대중들에게도 많이 알려지게 된 것 같은데, 그런 일은 어떻게 하게 된 건가?
G-Dragon같은 경우에는 SBS시상식에서 같이 섰는데, 그쪽(G-Dragon쪽) 댄서에게 G-Dragon이 나와 함께 해보면 좋을 것 같다고 했나 보더라. 댄서에게서 연락이 와서 함께 서게 되었지. 그때 근데 리허설도 별로 못했다. 같은 연습실에서 한번도 연습을 못했지. 사실 G-Dragon과는 내가 빅뱅의 ‘굿바이 베이비’라는 노래 뮤직비디오에 출연했었기 때문에 그 전부터 알고 지내는 사이였는데, 아무튼 그날 서로 공연에 대해서 얘기하고 그 친구가 원하는 것을 듣고 무대에서 리허설 한번 하고 바로 방송에 나가버렸지.
그게 그렇게 멋지게 나온 건가? 그렇다면 업타운은?
내 브라더 팝핀 현준, 그 형한테 연락이 와서 같이 일을 하게 되었지.
사람들은 어떤가?
음 빅뱅은 G-Dragon과 태양 이 두 친구와 얘기를 나누었는데 둘 다 정말 명랑하고 밝은 친구다. 태양이 되게 착한 것 같다. 우리 영상도 많이 봤다는 말도 하고. 메이크업 받는데 어깨도 주물러주더라.(웃음) G-Dragon도 착하고, 밝고 실력도 있고. 업타운 사람들은 별다른 감흥이 없다. 그 중에 매니악이라는 혼혈 그 형이 나한테 잘해주었기 때문에 같이 일하긴 했는데, 또 내 솔로 타임이 엄청 길었고. 아마 지구 역사상 가수가 노래하는데 댄서가 솔로로 30초 동안 개인기 한 건 내가 최초가 아닐까?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업타운이 게스트 뛰었다는 말이 있더라.(웃음) 이제는 댄스 스쿨을 운영하시고, 메이저 가수들과 호흡도 맞추는 메이저 댄서인데, 언더그라운드에서 활동하실 때와 어떤 차이가 있나?
보통 우리는 언더그라운드 댄서가 아니고 스트릿 댄서라고 하는데, 스트릿 댄서들은 자기가 하고 싶은걸 해야 된다. 공연 스타일이나 춤의 내용이나 모든 것에 있어서 자기 스타일이 확고하고 고집도 있지. 그게 스트릿 댄서의 세계에서는 맞는 거고. 나도 스트릿 댄서니까 내가 스트릿 댄스 공연 때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하지. 그런데 가수들이랑 호흡 맞추거나 뮤직비디오를 찍을 때는 그 사람들이 어떤 것을 원하는지를 염두에 두고 해야지. 그 사람들이 원하는 것 50% 내 스타일 50% 정도로 적당히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
하긴, 그렇다고 아예 자기 캐릭터를 버려버리면 그 사람들이 당신을 섭외한 이유가 없어지겠다.
그렇지, 그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내 캐릭터니까. 서로간의 의견을 잘 조율하면 좋은 결과가 나오는 거지.
지금까지는 좀 잘 맞았나?
다 잘 맞았다. 그러니까 잘 나왔고. 메이저 가수들과는 그 외에도 슈프림 팀, 다이나믹 듀오, 이기백 감독님, 레드락과 작업했는데 모두 즐거운 작업이었다. 결과도 좋았고.
춤을 좋아해서, 춤을 직업으로 삼고 싶은 친구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춤은 일단 직업으로 생각하지 말고 시작하는 것이 좋은 것 같다. 유명해지고 싶어서 시작하면 절대 안되고. 그냥 이 춤이 좋아서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 춤을 시작할 때 춤에 대한 역사나 기본기를 전부 알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런 역사나 기본기가 확실한 춤을 추어야 되고. 되도 않는 클럽댄스 같은 춤으로 시작하는 거 보다 한 장르를 배우고 그 장르를 몸에 익히는 게 중요하다. 춤을 오랫동안 추다 보면 자기 스타일은 저절로 나오게 되어있다. 성격 따라 스타일이 완전히 바뀌거든. 그게 제일 중요하다. 좋아해서 시작하는 것과 춤에 대해서 잘 알아야 하는 것. 그리고 돈은 다른 걸로 버는 것이 좋다. 다른 것도 잘하는 것이 있는 것이 좋지. 춤추는 걸로 돈 버는 거,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자기 캐릭터도 있어야 되고 실력도 완벽에 가까워야 하고 연습도 많이 해야 하고 그런 것들이 다 갖추어져 있으면 돈은 따라오게 되어있지.
캐릭터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 새롭다.
춤 잘 추는 사람은 엄청 많다. 나보다 잘 추는 사람도 있겠지. 그런데 10명 중에 9명은 춤은 잘 추는데 캐릭터가 없다. 아마 자신의 캐릭터가 뚜렷하다면 더욱 많은 일을 하게 될 수 있을 것이다.
자기 캐릭터가 무엇인지 자기가 아는 것이 중요하겠다.
그런데 그건 연습하다 보면 나온다. 죽자고 연습하면 자기 캐릭터를 발견하게 되어있다. 자기 성격에 충실해야지.
요즘에 모자 춤을 좀 밀고 있는 것 같다. 직접 개발한 건가?
모자 춤이 아니고 모자 트릭이라고 하는데 햇 트릭(Hat Trick)이라고. 모든 춤에 다 있다. 파핀, 락킹, 힙합 등 스탠딩 댄서들이 많이 쓰는데, 우리 팀이 좀 많이 하는 편이다. 모자 트릭은 직접 다 만들어야 한다. 모자를 많이 가지고 놀아야지. 내가 하는 트릭은 전부 내가 만든 트릭이다. 사실 모자 트릭은 내가 크게 좋아하는 스타일은 아닌데, 대중들이 좋아하니까 많이 보여준다. 나는 기본적인걸 많이 추는 스타일인데 대중들이 좋아하는 것은 따로 있으니까. 그런 선호도도 맞추려고 하는 편이다.
His Lifestyle
Monster Woo의 라이프 스타일
댄서는 아무래도 보여주는 직업이기 때문에 패션 스타일에도 많은 신경을 쓰실 것 같다. 어떤 스타일을 추구하는지 알 수 있을까?
댄서들은 대부분 자신이 추는 춤에 어울리는 옷을 많이 입는다. 그런데 나는 나한테 잘 어울리는 옷을 입지. 나는 항상 어떤 문화를 생각하면서 옷을 입는다. 나는 바이크 문화를 좋아하는 편이다. 그래서 바이크 느낌의 옷을 많이 입게 되는데, 춤을 추지 않을 때는 오토바이를 많이 타니까. 오토바이처럼 생긴 자전거를 타거나(웃음). 춤을 출 때는 바이크 느낌의 옷과 크럼프 느낌의 옷을 섞어서 입는 편이다. 검정색 계열의 옷도 많이 입는다. 그렇다고 할리 데이비슨 타는 아저씨들처럼 입는 건 아니고. 그건 내 취향 아니거든. 바이크를 타더라도 어디든지 갈 수 있는 옷, 어디에 가서도 어색하지 않을 수 있는 옷을 즐긴다. 춤도 출 수 있고, 친구들도 만날 수 있고, 결혼식도 갈 수 있는 옷이면서 바이크 느낌이 나는 옷을 즐긴다. 너무 멋 내지 않으면서도 멋있고 젊잖은 옷을 좋아하는 편이다.
내 개인적인 생각인지 모르겠는데 지구에서 그 머리(김영우씨의 헤어스타일은 모히칸 헤어라고 불리는 스타일이다.)가 가장 잘 어울리는 사람이 아마 당신인 것 같다. 남들이 그 머리를 하면 괜히 멋 낸 것 같고 이상해 보일 때도 있는데 당신은 그 머리를 하고 태어난 것 같아 보이기도 하고.
(웃음)그런가? 왠 줄 아나? 다른 머리가 나한테 안 어울린다. 원래는 삭발을 많이 하고 다녔다. 그런데 삭발을 너무 오래해서 다른 머리를 할게 없나 생각했는데 나한테 어울리는 머리가 별로 없더라. 내가 이 덩치에 바람머리를 할 순 없으니까. 삭발만큼 강해 보이면서 좀 멋있는 머리가 뭐가 있을까 하다가 이 머리를 한번 해봤는데 반응도 좋고 나도 마음에 들어서 계속 이 머리를 고집하고 있다. 힘이 생긴 것 같기도 하고, 삼손처럼.
전투력 + 3 뭐 이런 거 말인가?
(웃음)맞다. 전투력이 생긴 것 같기도 하고. 또 내가 락 음악도 굉장히 좋아한다. 락 문화도 좋아하고. 힙합 문화도 좋아하지만 락 문화도 좋아하는데, 내가 좋아하는 세 가지 문화가 힙합, 락, 바이크이다. 이 세가지 문화가 내 삶에서 나름의 밸런스를 유지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 같다. 연습실에서 크럼프 하고 집에서 락 음악 듣고 밖에서 바이크 타고. 내 인생 그게 전부다. 이 머리는 한 3년 전부터 해왔던 것 같다. 그런데 요즘 이 머리가 좀 유행을 타는지 얼마 전에는 빅뱅의 태양이 이 머리를 하고 나오더니 최근에는 2PM이 단체로 모히칸을 하고 나오더라. 예전에 태양이 하고 나왔을 때는 주변에서 나보고 태양 스타일이라고 놀리기도 했었고.
그러면 좀 억울하지 않나?
뭐 괜찮다. 처음에는 그런 말 하는 사람들 그냥 때려주고 말았는데(웃음), 이제는 태양이 내 어깨 주물러 줬으니까 괜찮다(웃음).
하긴, 그럼 된 거지. 당신은 댄서지만 우리는 패션매거진이니까 패션에 관한 질문도 몇 개 더 해봐야겠다. 좋아하는 브랜드가 있다면?
외국 브랜드 중에서는, Neighborhood, W-Taps, Tender Loin, Wacko Maria, Calee, Visvim 등의 브랜드를 좋아하는데 바이크랑 연관된 브랜드다. 한국 브랜드 중에서는 내가 속해있는 FLAM 크루의 옷인 Rocat 을 좋아한다. 나도 원래 패션 브랜드를 하나 만들어볼까 생각을 하긴 했었는데, Rocat의 옷이 딱 그런 스타일의 옷이라서 함께 진행을 하기로 했다. Rocat도 좋아하고, Covernat도 좋아하고. Vagx도 좋아한다.
말 한대로, FLAM의 크루인데, FLAM의 간단한 소개와, 당신이 맡아서 하고 있는 일을 알려달라.
FLAM은 패션 컴퍼니이다. Rocat, Vagx 등의 브랜드가 FLAM의 멤버로는 A.K.A Junky, 이기정 대표와 Web diredctor를 맡고 있는 선희라는 친구, 그리고 Designer A.K.A Spider 병준이형, MD로는 스케이트 보드를 사랑하는 원채형, 그리고 Doonga Park의 G-Haksu형과 팝핀DS 그리고 내가 모델과 홍보를 담당하고 있다. 나는 그 안에서 모델을 하고 있고, 가끔 디자인 회의에 참여할 때도 있고. 나도 바이크 스타일의 옷을 만들고 싶었거든. 모델을 주로 하고, 그 외에는 뭐 보디가드?(웃음)
당신의 취미는 무엇인가?
취미가 생각보다 몇 개 있다. 난 바이크를 춤만큼 좋아한다. 바이크 안 탈 때는 바이크처럼 생긴 자전거를 타거나 하는데, 또 한국에서 핫로드를 탈 수 있었더라면 난 벌써 핫로드 타고 있었을 거다. 만화 보는 것도 좋아하고, 애니메이션도 좋아하고. ‘하울의 움직이는 성’ 같은 만화 있지 않나.
뭐, 내가 잘못들은 건 아닌가?
(웃음)제대로 들었다. 난 영화 볼 때 액션영화는 싫어한다. 왜냐면 내 인생이 너무 액션영화 같아서 등에 칼도 맞아보고 그러다 보니까 그런 영화는 싫어한다. 무서운 영화도 싫어하고. 나는 러브래터 같은 멜로 영화 좋아한다. 또, 음악 감상도 좋아하는데, 락, 힙합 음악 듣는 것 좋아한다. 옛날 힙합음악 같은 것들. 그런 것들 듣는 것 좋아한다. 또 예전에 내가 복싱 선수였으니까 일주일에 세 번씩 복싱 연습을 한다. 우리 팀원들 가르치지. 스파링은 살살 하고. 나한테 그냥 복싱 배우러 온다는 사람들도 있다.
취미를 잃은 친구들에게 한 말씀 부탁한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한가지를 중요하게 갖고 있으면 그 사람 인생 하루하루에 도움이 많이 되는 것 같다. 맨날 컴퓨터 하고 뭐 살까 고민만 하고 그러면 사람이 발전이 없다. 좋아하는 취미의 문화에 대해서 공부하면 지식도 생기고 좋지. 드럼을 치면서 드럼에 관계된 락이나 힙합 음악까지 공부하면 재미있다. 또 드럼을 치면서 스트레스도 풀리고. 춤을 예로 들어볼까? 춤을 추더라도 처음에는 좀 어렵더라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단계가 오면 그때부터는 정말 즐겁다. 질문에 맞는 대답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사람이 항상 뭔가를 창조하고 발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흐르는 물이 썩지 않는 것처럼. 그렇게 취미를 갖고 취미를 발전시켜나가다 보면 자기 영혼에 상당히 좋은 것 같다.
요즘 당신이 인터뷰를 굉장히 많이 할 것 같아서 내가 어떤 질문을 안받아봤을까 고민하다가 이 질문을 생각해냈다. 이상형은 어떤 타입인가?
아, 그건 정말 처음 들어보는 질문이다(웃음). 성격 밝고 이해심 많고. 자기 하는 일 열심히 하고. 자기에 대한 믿음이 있는 여자가 좋다. 제일 중요한 것은 센스가 있어야 한다. 센스 있는 여자는 다 잘할 수 있다. 춤도 잘 출 수 있고, 리듬을 타는 거지. 옷 입는 센스, 말하는 센스, 뭐 그런 거지. 센스 있으면 다 잘할 수 있으니까.
내적인 얘기만 해서 실망이 좀 크다.
아, 외모? 외모는 그냥 예쁜 것보다 매력 있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머리 스타일 하나만 자기한테 잘 어울려도 좋고.
처음 받아보는 질문인데도 역시 준비가 되어있는 것 같다.
나 평소에 이런 저런 생각 되게 많이 하고 산다.
드디어 마지막 질문이다. 당신이 싫어하는 부류의 사람들은 어떤 타입인가?
좋아하는 사람 싫어하는 사람 다 말해도 되나? 좋아하는 사람들은 소울이 있는 사람을 좋아한다. 옷을 만드는 사람도 소울을 담아서 만드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고, 가수들도 한국에 허접한 사람들 진짜 많은데 다이나믹 듀오 같은 진짜 소울 있는 사람도 있고. 그런 사람들을 보면 내면에 있는 것을 토해내는 것 같다. BMK누님도 그렇고. 뭘 하든지 진짜 영혼을 담아서 하는 사람이 좋다. 자기 문화에 대한 존경심도 있고, 마음씨 좋은 사람들도 좋아하고. 싫어하는 사람들은 가식적인 사람들? 거짓말 하는 사람들, 또 쭉정이들. 빈 껍데기 같은 사람들이 싫다. 정신세계가 너무 어려서 말이 안 통하는 사람들. 진지할 때 진지할지 모르는 사람들도 싫고. 노는 것만 좋아하고. 남 무시하는 사람도 싫어하고. 우리 학생들을 보면 다 어리지 않나. 그런데 이 친구들을 통해서 내가 사랑을 배우고 성격도 순화된다. 그런데 이 친구들은 정말 아무것도 없이 온 친구들이거든. 집이 어려운 애들도 있고. 난 이 친구들을 존중한다. 어리다고 누군가를 무시하는 사람들을 싫어한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없나?
젊을 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위해서 100%, 120% 노력하고 공부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그렇게 살고 있고 다른 사람들도 그랬으면 좋겠다.
Brownbreath
홍대의 갈색 숨결
무신사닷컴이 강조하는 가장 이상적인 스트릿 브랜드의 형태는 언제나 좋은 옷과 그 좋은 옷을 뒷받침하는 충실한 문화적 근거가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한 브랜드를 만날 때 마다 무신사닷컴은 무신사 매거진을 통해 그들을 기쁘게 소개했으며 더욱 그들의 행적이 알려지도록 노력했다.
하지만 이것이 매우 어렵고 각박한 소리이며 어쩌면 뜬구름 잡는 소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또한 하고 있다. 옷이 있고 그 옷을 뒷받침하는 문화가 뒤따라와야 기름진 브랜드가 된다는 말은 어쩌면 이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접을 수는 없었다. 그만큼 그것이 어려운 일이고 제대로 해내기 힘든 일이며 시작이 좋았다 하더라도 초심을 지키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무신사매거진이 그것을 강조하고 모든 스트릿 브랜드들이 그리 해야 한다고 주창하는 이유는 바로 그것을 묵묵히 해나가는 브랜드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브랜드들이 굳건히 자신들의 영혁을 넓혀나가기에 그리고 그 모습이 정말 좋기에 강조하는 것이다. 무신사매거진은 패션과 기반 문화를 굳건히 지켜나가는 대표적인 브랜드, 홍대의 갈색 숨결, Brownbreath를 소개한다.
History
Brownbreath의 5년, 그것이 역사가 되기까지
100일이나 첫 돌을 기념하는 것은 그렇다손 쳐도 ‘역사’를 운운하기에 5년은 조금 짧은 감이 있다. 역사는 무거운 단어다. 역사는 세월과는 다르다. 단순히 시간이 흘러간 것이 세월이라면 역사는 그 지나온 시간 동안 기록 할 것들이 있어야 한다. 5년은 기록된 무언가가 쌓이기에 약간은 부족할 시간일 수도 있다.
하지만 수험생에게 있어서의 1년이 모두 같은 1년이 아니기에 매년 11월, 각자 희비가 갈리는 것처럼 브랜드에게 있어서의 5년도 다 같은 5년이 아닐 수도 있다. 여느 브랜드와 다름없는 지나온 5년일 수도 있고 갖가지 시도들을 다 해본 기록할 만한 역사일 수도 있다. Brownbreath가 지나온 5년은 역사로 불릴만한 시간들이다. 여기 그 역사의 순간 순간을 정리해보았다.
Brownbreath 연혁
2005년 PROPAGADNA STEREO 론칭
2006년 DEFINITE ANS. , EIGHTFIVE 론칭
2006년 8월. BROWNBREATH 설립.
2006년 국내외 아티스트들의 작업물을 소개하는 온라인 매거진 론칭
2006년 일본 프리미엄 진브랜드 Redpepper Tee Graphic Design
2007년 새로운 라인 ARROUND CLOTHINK 론칭.
2007년 힙합프로듀서 LOPTIMIST 1집 비쥬얼 아트 담당.
2007년 신촌 및 압구정 WALLPAINTING 진행
2007년 SNEAKER PIMPS 커스텀 슈즈 참여
2007년 미국 Toy company 'A&A Company' Design Consulting
2007년 CLUB THE SPOT STATIONARY GRAPHIC 진행
2007년 목포 CLUB AGEHA WALL PAINTING 및 STATIONARY GRAPHIC 진행
2007년 헤이리 7FALL IN CHOCOLATE ART & DESIGN 참여
2007년 힙합뮤지션 URBANALOG 뮤직비디오 제작
2007년 BROWNBREATH OPENSTUDIO
2008년 CONVERS 주최 STREET ART FESTIVAL 참여
2008년 전주시 주최 댄스팀 LAST FOR ONE 무대 WALLPAINTING
2008년 MOVEMENT CREW의 ARK STUDIO 실내 STATIONARY GRAPHIC 진행
2008년~ HIPHOPPLAYA SHOW 포스터 디자인
2008년 BROWNBREATH 공식 오프라인 샵 WALLSTORE 오픈(홍대)
2008년 로컬 DJ들의 온라인 라디오 쇼 BROWNBREAKS 오픈
2008년 1st BROWNBREAKS PARTY
2008년 홍콩 Premium & GIFTSHOW 참여
2009년 DEVSISTERS IPHONE 어플리케이션 제작
2009년 삼성 X BANG & OLUPSEN 모바일 페키지 일러스트레이션.
2009년 스트릿아트 잡지 STRUT메거진 표지 일러스트레이션 및 ARTWORK 참여.
2009년 3rd WORLD DJ FESTIVAL 웹 사이트 디자인.
2009년 힙합뮤지션 뉴올리언스 인스트루멘탈 앨범 비쥬얼 아트 담당.
2009년 일본 시계브랜드 Alive Tokyo Collaboration Project
2009년 훵카프릭 부스터 부틀렉 앨범 투자 및 프로모션(발매예정)
연혁을 보니 Brownbreath의 시작은 2006년 8월인데 전체 연혁의 시작은 Propaganda Stereo가 출범한 2005년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Brownbreath는 단순한 하나의 브랜드가 아닌, ARROUND CLOTHINK, DEFINITE ANS., EIGHTFIVE, PROPAGANDA STEREO라는 이름을 지닌 4가지 브랜드들이 합쳐서 만들어진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4 Colors
사인사색
Brownbreath는 앞서 말한 것처럼 ARROUND CLOTHINK, DEFINITE ANS., EIGHTFIVE, PROPAGANDA STEREO라는 네 가지 브랜드로 구성되어 있는 공동체. 각각의 브랜드는 분명히 서로 다른 각자의 색을 발현하고 있지만 공통점은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SPREAD THE MESSAGE. 각각의 브랜드가 말하고자 하는 ‘의미’를 그들의 옷이 갈 수 있는 모든 곳, 그야말로 방방곡곡에 퍼뜨리고자 하는 목표만이 4개의 브랜드가 가진 유일한 공통점이다. 단 한가지 공통점을 가진 것 외에는 각각의 색깔을 뚜렷하게 보여주고 있는 이 4개의 브랜드들을 각각 소개한다.
ARROUND CLOTHINK
Brownbreath의 김우진 디렉터가 만들어가는 브랜드로 인간과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역설하고 있다. CLOTHINK는 옷(Clothing)과 생각하다(Think)라는 두 단어의 합성어. 모든 표현의 시작인 ‘생각’, 그리고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있는 장인 ‘옷’, 이 두 가지가 합쳐지고 사람의 몸에 입혀져 주변(AROUND+ROUND)에 메시지가 전달되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있는 ARROUND CLOTHINK. 인간과 사회에 관한 다양한 주제를 매 시즌마다 다양하게 선보이는 ARROUND CLOTHINK는 지금도 계속 담아낼 메시지를 떠올리고 그 메시지를 티셔츠에 그려내고 있다.
DEFINITE ANS.
Brownbreath의 모든 브랜드는 하나같이 ‘좋은’것들이지만 가장 ‘강력한’것을 꼽자면 바로 이 DEFINITE ANS.를 꼽아야 하겠다. DEFINITE ANS.의 주제는 사회의 부조리에 대한 강한 비판이다. 모든 스트릿 브랜드가 사회 비판을 하고 있는 와중에 DEFINITE ANS.가 돋보이는 이유는 미국 친구들이 미국 정치인을 비판하는 남 나라 이야기가 담겨있는 것이 아닌 우리 사회의 부적절한 현실의 우리의 눈으로 꼬집은 것들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Brownbreath의 이지용 디렉터가 직접 보고 느끼는 ‘잘못된 점’이 그래픽이라는 망을 통과하여 티셔츠에 얹혀진 DEFINITE ANS.의 제품들. 용산 사태와 촛불 시위 등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부조리를 담은 DEFINITE ANS.는 당신이 매우 바쁘기 때문에 미처 관심 갖지 못했던 것들을 주기적으로 환기시켜주고 있다.
EIGHTFIVE
음악으로 시작해서 음악으로 끝이 나는 EIGHTFIVE는 본질인 음악과, 산물인 감상을 주제로 하는 브랜드. 대부분의 패션 디자이너가 태어나게 되는 원동력은 ‘내가 입고 싶은 옷이 세상에 없다’라는 생각에서 출발하는데 서인재 디렉터가 만드는 EIGHTFIVE 역시 그러한 생각에서 출발한 브랜드이다. 해외에 수없이 존재하는 뮤지션을 주제로 한 의류나 액세서리들, 그렇지만 국내에는 그의 마음에 차는 것들이 없었던 것일까. 그는 직접 음악을 주제로 한 브랜드를 만들었고 그 브랜드의 이름은 EIGHTFIVE가 되었고 Brownbreath의 한 축이 되었다.
PROPAGANDA STEREO
선동(PROPAGANDA)이라는 이름을 가진 PROPAGANDA STEREO는 걸어 다니는 포스터를 목적으로 한다. 한번 보여지고 떼어지는 포스터가 아닌 오래볼 수 있는 포스터. 이 브랜드는 크게 세계 역사에서 언급되는 이들이 세상에 던진 메시지와 사건들을 주제로 하고 있다. 레닌과 마르크스, 카프카와 간디 등 역사의 몇 페이지를 독식한 선동가들의 명언을 주제로 한 PROPAGANDA STEREO. 한 사람이 뱉은 말에 불과할 수 있지만 그 말이 수많은 이들의 공감을 끌어낸다면 그 말 한마디가 어떤 위력을 발휘하는지에 대한 존중과 역설을 담은 브랜드이다. 또한 현재 진행중인 Propaganda Technique에서는 선동하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담으면서 이러한 “선동”에 놀아나지 말자는 역설법을 취하고 있으며, Motherland Campaign을 통해 우리, 우리나라의 이야기를 담은 그래픽을 내뱉고 있다.
이러한 4개의 브랜드로 이루어진 Brownbreath. 그러나 Brownbreath를 ‘브랜드’가 아닌 ‘단체’라는 애매한 호칭으로 부를 수 밖에 없는 이유는 3가지로 구성되는 그들의 활동 때문이다.
3 Activities
Brownbreath의 활동은 3가지로 나눌 수 있다.
Brownbreath를 브랜드가 아닌 일종의 ‘단체’로 정의해야 하는 이유는 그들이 단순한 옷을 만들어내는 브랜드가 아닌 다양한 문화적 활동을 하는 집단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활동은 경계가 분명한 세 가지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들의 웹 페이지에 존재하는 Web Magazine, 그리고 메시지를 담은 의류 브랜드, 그리고 아트웍 작업이 바로 그 세 가지이다.
Brownbreath는 스트릿 문화를 기반하는 다양한 서브컬처들과 아티스트들을 지원하는데 그 지원방식은 금전적인 투자가 아닌 문화와 아티스트들에 대한 소개를 통한 기반확장이다. Brownbreath의 Magazine코너에서 볼 수 있는 아티스트들와 서브컬처에 대한 소개는 ‘언급’에 조차 목마른 이들에 대한 소중한 ‘장’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다.
서로 다른 메시지를 담은 4개의 브랜드로 구성된 Brownbreath Apparel 역시 Brownbreath의 메인 활동. Brownbreath Apparel은 앞서 설명한 것과 마찬가지로 4가지 라인 마다 그만의 메시지가 담겨있는 것이 특징인데, 모든 제품들은 세탁후의 축률, 트위스트를 최소화 하기 위한 가공처리가 되어 있으며 가방류 등은 고장 시 A/S가 가능하다. 의류 브랜드가 갖추어야 할 외적인 퀄리티를 충분히 지니고 있다고 보면 되겠다.
디자인 티셔츠를 주로 만들어내는 그들이니만큼 아트웍의 수준 또한 출중한데 GRAPHIC/ ILLUSTRATION/ MOTION GRAPHIC/ INTERACTION DESIGN/ WEB CONSULTING 등의 작업을 통해 꾸준히 쌓아가는 그들의 포트폴리오는 이제 꽤 넘보기 힘들어졌다. 수많은 연혁들 중 막대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그들의 디자인 작업들은 계속 진행형이며 바쁜 그들을 더욱 바쁘게 만들고 있다.
Wall Store
그들을 만나볼 수 있는 홍대의 한 공간
2008년 그들의 행적에 한 안식처가 생겼다면 그것은 홍대의 Wallstore겠다. 그들을 구성하는 4가지 브랜드들과 그들의 색깔과 잘 어울리는 브랜드들을 만나볼 수 있는 홍대의 Wallstore는 2008년 생긴 이래, 홍대의 대표적인 편집매장으로 꾸준한 성장을 일궈가고 있다. 너무 크지도 않게, 하지만 내실 있게 성장해가는 Wallstore는 Brownbreath를 사랑하는, 그리고 스트릿 문화를 사랑하는 이들의 소중한 안식처가 되어가고 있다. 연중 단 이틀, 추석과 설날 당일만 쉬는 Wallstore는 1년 48시간만 빼고는 항상 열려있으니 언제라도 찾아가도 좋다. 단, 오후 2시 전에 가야 할 것이다. 또한 밤 11시까지는 열려있으니 막차시간 전까지는 쇼핑해도 좋다.
文化共同體
문화공동체, Brownbreath
4가지의 색깔을 가진 브랜드들이 모여있는, 아티스트와 서브컬처를 지원하는 매거진을 운영하는, 다양한 아트웍을 문화 곳곳에 뿌리는, 실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는 Brownbreath. 브랜드라고 하기에도, 언론이라고 하기에도, 아티스트 집단이라고 하기에도 어딘가 애매한 그들에게 딱 알맞은 표현은 아마 문화공동체일 것이다. 다양한 스트릿 서브 컬처를 창조해내고 이미 있는 것들을 알리는 이 거리의 가장 알찬 문화공동체, Brownbreath는 모두의 취향이 될 수는 없겠지만 모두의 인정을 받아야 할 이들이다. 그들의 앞으로를 응원해보자. 더 많은 것을 쏟아내어 우리를 기쁘게 할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