琴兒禮讚(금아예찬)

산문 2009. 10. 12. 00:12

琴兒禮讚(금아예찬)


참으로 존경하는 이를 꼽으라고 하면, 꼽을 이가 적어 목이 마른 요즘, 그나마 나에게 단비가 되는 이가있으니 그는 바로 금아 피천득 선생이다. 비틀즈의 음악을 유물로만 접한 것은 동시대에 살아보지 못했으니 억울하지 않으나, 그의 생전에 내가 그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은 참으로 애석하여 억울하기 까지 한 일이다. 그만큼 지금, 그에 대한 나의 사모는 아주 열렬하다.

그를 처음 알게 된 것은 물론 교과서를 통해서이다. 수천 금괴와 같은 글을 소개한 교과서지만 나에게 피천득 선생을 '금아'라고 부른다는 사실조차 알려주지 않았다. 야속한 일이다. 그의 팬이 되길 자처한 나는 실은 그럴 자격이 없는 이였다. 그럼에도 교과서의 지은이를 탓할 수 없는 이유는 그 책이 아니었다면 피천득 선생을 애초에 알지도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주 알량한 글 기술을 빌려 돈을 벌고 있는 나는 아주 깨끗한 글을 읽지 않으면 좋은 글을 쓰기 어렵다. 상업 글꾼인 나는 그렇기 때문에 '백석 전집'이라든지 하는 것을 주로 읽는데, 이라든지 하는 것 중에는 저 유명한 피천득 선생의 수필집인 인연이 있다. 실은 가장 아끼는 책 중 맨 위 꼭짓점을 오래도록 지키고 있던 백석 전집을 밀어낸지 오래되었다. 그것은 피천득 선생의 글은 깨끗하기도 하거니와 재미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의 글은 문장이 짧아 속도감이 있고, 곳곳에 읽는 재미를 위한 기술을 두어 지루하지 않다. 쉽게 읽히는 글을 쓰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만일 그가 그의 글들을 쓰는데 크게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다면 그것은 나같은 범인들의 기를 크게 죽이는 일일 것이다. 나는 그가 그의 글을 쓰면서 수만번 퇴고했기를 기도한다. 그만큼 그의 글은 재미도, 완성도도 모두 충만하다. "콜리지는 그를 가리켜 '아마도 인간성이 창조한 가장 위대한 천재'라고 예찬하였다. 그 말이 틀렸다면 '아마도'라는 말을 붙인 데 있을 것이다.(수필집 '인연' 중 '셰익스피어'의 맨 마지막 문장)"라는 문장은 그의 문장 중 내가 꼽는 가장 재미 있는 것이다.

얕고 편협된 상업적인 글쓰기가 업인 나이기에 그가 보여주는 대담한 글솜씨에 집중할 때가 있다. 그 집중을 어지럽히는 것이 단 하나 있다면 그것은 글솜씨가 펼치는 즐거운 내용일 것이다. 그는 그가 팔불출 아버지임을 숨기지 않는 대신에 딸에게 손수 편지를 쓰는 로멘티스트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것을 읽는 것이 정말 즐거운 나머지 떠올리기 뭣한 군시절 나에게 온 아버지의 편지가 떠오르기도 하고, 나도 나중에 내 자식에게 편지를 써주어야 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의 딸이라고 하여 어찌 사춘기가 없었을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어찌 갈등이 없었겠냐만은, 그럼에도 그들이 그 갈등들을 잘 해결했을 것임은 고민의 여지가 없는 일이다. 모든 것은 글에 나와있다.

그는 그를 아주 평범한 사람으로 묘사하며 때로는 반성하고 그 반성을 글을 통해 내보일 때도 있다. 그런 반성 중에는 나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진중한 것들도 있고, '술을 좀 마실 줄 알았더라면'하는 가벼운 것들도 있다. 어느 것이건 따사로운 것은 지나침이 없기 때문이다. 그의 글은 찬란하지는 않지만 따뜻하다. 진솔하되 걸러내어 낯붉힐 일도 없다. 그는 술은 하지 못하나 담배는 가끔 피우고, 젊은 여인의 아름다움을 칭송한다. 나는 그와 일면식이 없으며 따라서 대화를 나눈 적도 없고, 누가 나에게 그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려준 적도 없으나, 나는 그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고 있다. 과거와 현재를 책이 이어준다는 말을 나는 그의 글을 통해서 실감한다. 그에게 나를 알릴 도리가 없는 것이 야속하나, 욕심은 언제나 화를 부른다. 그가 도산 안창호 선생을 존경하는 만큼 내가 그를 존경한다 말하기 어려운 것은, 그가 그의 존경심을 표현함에 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너무나 적기 때문이다. 허나 표현은 미처 덜하다 하더라도, 마음이라도 그만한 것은 실로 대단히 확실하다.

Posted by 심준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