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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3.07 연작, 학교생활 1
  2. 2010.01.23 기대
  3. 2010.01.15 희망사항 2
  4. 2010.01.06 사시사철 로멘틱하여라. 2
  5. 2009.12.17 우연인 것 5
  6. 2009.12.08 위로
  7. 2009.11.17 여인상
  8. 2009.10.20 10월 어느 날
  9. 2009.10.12 이런 사람은 되지 맙시다. 3
  10. 2009.10.12 琴兒禮讚(금아예찬) 4

연작, 학교생활

산문 2013. 3. 7. 13:29

작년 가을 때, 장편 수필을 쓰고 싶어 시작했는데, 사는데 치이고 삶의 의욕이 떨어지면서 중단 된 프로젝트입니다. 간만에 제 블로그에 공개해보아요.


연작 학교 생활

“김태장 장로님께서 그러셨어, 자식이 50살까지는 부모가 살아있어야 한다고, 그때까지 부모는 부모 노릇을 해야 된다고, 자식은 언제까지나 자식이라고.”

태어나서 딱 두 번째로, 아버지에게 뺨을 수 차례 두들겨 맞고 들은 말이다. 나는 아마, 1, 2지망 대학을 모두 떨어진 채, 컴퓨터를 하고 있다가 3지망 대학도 떨어지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에 아버지께 대들었었다. 평생에 걸쳐 그 이전까지, 단 한번 매를 드셨던 아버지는 당신의 자식이 대학에 못 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철없이 대드는 아들에게 느끼는 분노를 더해 매 대신 손바닥을 드셨다. 입안이 헐도록 두들겨 맞고 무릎 꿇고 앉아 저 말을 듣는데, 얼얼하고 화끈거리는 것조차 잊은 채, 나도 나중에 자식을 낳으면 저 얘기를 꼭 해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정도 지난 이야기지만, 기억에 남는다. 가구의 배치도, 앉았던 의자도, 꿇은 무릎 앞에 있던 붉은 가죽 소파도 그 위에서 훈계하던 아버지의 표정도. 모두 기억에 남아있다.

교회 청소년 부 부원으로서 마지막으로 참가한 겨울 수련회. 그 수련회는 다른 교회 청소년 부와 함께 했던 이른바 합동 수련회였다. 그 친구들이랑은 기억에 2번째 만나는데, 그들의 교회는 시골 어딘가에 있어서, 한번은 우리가 찾아갔고 그 해 겨울에는 그들이 찾아왔던 그런 교류가 있던 곳이었다. 수련회라면 늘 시골만을 찾았던 우리들은 휴대폰을 빼앗긴 채, 나뉘어진 일정 금액만을 들고 서울의 여러 곳을 탐방하는 조금은 새로운 형태의 수련회를 경험하였다. 다른 지역의 아이들과 함께 소통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아니었나 생각해본다. 우리의 코스 중 마지막은 과연 남산이었는데, 다른 교회에서 온 이들 중 여간 꾀돌이가 아니었던 친구 한 명이 갑자기 다리에 쥐가 났다며 주저 앉아버렸다. 휴대폰도 반납했고, 마냥 어른들이 내려오길 기다리는 것이 성미에 맞지가 않아, 2명을 먼저 위에 올려 보내고, 나는 다리에 쥐가 난 그 녀석을 업고 남산 빨간 벽돌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하면 조금 미련한 방법이었을지도 모르지만, 당시 내 생각은 ‘네가 꾀병이면 내가 널 업는 모습을 보고 양심에 찔릴 것이며, 진짜라면 나에게 고마워 할 것이다. 두 가지 경우 모두, 너 혹은 나에게 좋은 경우가 될 것이다.’라는 것이었다. 그 친구의 속에 들어가 본 것은 아니나, 당시에는 약간 서로간의 그런 말 없는 감정이 이어졌다.

먼저 올라간 두 친구들에게 이야기를 전해들은 교회 선생님들이 하나 둘 내려오기 시작했고, 내 등에 업혀있던 친구를 들쳐 메고 올라갔다. 그러면서 나에게 소리쳤다.

“준섭아! 너 대학 붙었대! 어머니께 전화 왔다!”

교회 수련회에서 다리에 쥐가 난 친구를 업고 남산을 거의 다 올라왔는데, 갑자기 내가 대학에 붙었다니, 정신이 없었다. 붙고 나서야 알았다, 내가 떨어질 수도 있었다는 사실을. 솔직히 그 때의 소감을 말하자면, 크게 기쁘지 않았다. 어안이 벙벙하긴 했으나, 정말 솔직히, 기쁘지 않았다. 우선 합격한 대학 – 건국대학교 - 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1, 2지망으로 썼던 대학들이 이름값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는 더욱 나은 곳들이었고, 이 들이 하나, 둘 떨어지면서 뭔가 ‘재수를 하든, 반수를 하든’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다. 붙든 안 붙든 오래 다닐 곳이 아니었다, 건국대학교는.

처음 대학에 갔을 때가 떠오른다. 함께 교회에 다니던 시온이 누나가 이미 1년 전부터 이 대학을 다니고 있었고, 내가 합격했다는 사실을 알고 굉장히 반가워 하며 나에게 길을 안내해 줬었다. 나보다 한 살인가가 많은 시온이 누나는 당시 교회 목사님의 딸이었는데, 함께 청소년 부 생활을 하면서 정말 많이 부대끼고 살았다. 그 당시 우리 교회는 청소년 부끼리 정말 친하였다. 서로가 가족 같았고, 일요일만 되면 정말 집에 가기 싫을 정도로 오래도록 놀았다. 축구도 자주하고 농구도 자주하고, 수련회 가기 전날이면 꼭 교회에서 잤다. 노래방은 빠지지 않고 갔다. 그 때가 참 그립다. 그 때의 친구들 중 누군가는 프랑스로 유학을 갔고, 지금은 결혼을 했다. 어떤 친구는 뉴질랜드로 이민을 갔다가 한국에 돌아와서 영어강사를 하고 있고, 함께 간 그의 형은 아직 그곳에 있다. 그가 정말로 보고 싶다. 어떤 이는 군대에 갔고, 그리고 제대를 했다. 지금은 모두들 자주 만나지 못한다. 강렬한 기억이 지금도 남아있을 정도의 진한 유대를 만들어냈을 뿐이다.

시온이 누나 역시 그 중 한 명이었다. 우리 교회는 분가선교를 지향하는 교회라 일정 숫자가 넘으면 목사님과 분가를 희망하는 몇몇 교우들이 함께 새로운 개척교회를 만드는데, 당시 교회 목사님의 딸이었던 시온이 누나는 그의 오빠인 연용이 형과 함께 새로운 교회로 가게 되었다. 환송회를 하면서 돌아가면서 포옹을 하는데, 코 옆의 교회를 가는 그 둘을 안으며 왜 그리 울었던지 모르겠다.

“건대 입구 역 말고, 어린이 대공원 역으로 와~”

어린이 대공원 역 3번 출구로 나와 한참을 걸어가니 시온이 누나가 있었다. 시온이 누나는 우리에게 먹을 것을 남기면 안 된다고 말할 때 짓던 그 미소를 띄우며 나를 반겼다. 여기는 어디고, 저기는 무엇이며, 나는 저 건물에서 수업을 들으니, 우리 종종 만나서 점심을 먹자고 하였다. 하지만 우리는 함께 대학을 다니던 1~2년 간 그리 많은 점심을 먹진 않았다. 함께 대학을 다닌다고 해서, 그리 자주 만나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입학한 과는 공과 대학 소속의 토목환경공학부였다. 정확히는 과가 아니라 두 과가 합쳐진 학부였으므로, 우리는 2학년 때부터 토목공학과와 환경공학과를 선택할 수 있었는데, 실은 1학년 때부터 ‘환경반’, ‘토목반’으로 나누어져 수업을 따로 들으므로 1학년 때부터 대충은 과가 정해진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나는 사실은 모든 궁금한 사항을 토목공학과 학회장에게 물어보고 입할 정도로 내가 입학한 과를 아예 토목과인줄 생각했는데, 예비 대학 때 어떻게 친해져서 수다를 떨던 녀석이 환경반 쪽에 줄을 서길래 나도 그냥 그렇게 줄을 서버렸다. 아무렴 어떠랴, 오래 다닐 대학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렇게도 겁 없이 선택할 수 있었다. 사실 환경공학과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환경운동 비슷한 것 하겠거니 생각했다. 어차피 오래 다닐 대학이 아니었다.

“너 공무원은 안 어울려. 무슨 공무원이야, 넌 좀 더 활동적인 일을 해야지!”

삼수를 해서 나보다 2살이 많았던 은혜누나를 우린 ‘형’이라고 불렀다. 은혜형은 웃음이 시원시원하고 간지럼을 많이 타는 형이었다. 그리고 생각이 깊었다. 친구 핸드폰으로 형에게 장난 전화를 걸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 때 은혜형은 내 장난에 속아 벌벌 떨면서 전화를 받았다. 아마 휴대전화 요금 미납이 있다든지 하는 가벼운 것이었는데, 왜 그리 긴장하면서 받았는지 모르겠다. 웃음을 참기 힘들어 내가 장난 친 것임을 고백하자,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전화를 끊었었다. 나보다 두 살이나 많았지만, 훨씬 순수한 사람이었다.

당시 나는 ‘재수를 하든, 반수를 하든’ 하던 마음이 사라진 상태였다. 새로운 노력을 하는 것이 두려운 현실에 놓여있었다. 어쩌면, 애초에 나에게 그런 의지는 없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정말 새로운 대학에 가고 싶었는가? 나에게 ‘좋은 대학’을 위해 1년을 더 투자할, 그냥 보내기만 하면 되는 1년이 아니라, 더욱 치열하게 노력해야 하는 그런 1년을 보낼 야망이 있던가? 나는 그런 사람인가? 아니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한 해를 투자하겠다는 약속은 나에게 한 약속이 아닌 나의 부모님께 드린 것이었다. 그들의 불만족을 잠시나마 완화 시키기 위한 기만이었다. 서울 사대부고에 입학하시고도 남들이 인정하는 대학에 가지 못했던 아버지가 원했던 대리만족, 그것에 대한 실망을 조금이나마 숨겨보려 했던 노력이었다.

“행정 고시를 볼 테니, 반수는 포기할게요. 대학 친구들이 너무 좋아요.”

한번 더 도망쳤다. 반수를 하겠다는 약속보다도 더욱 과감한 눈가림이었다. 20살이었던 나는 29살인 지금보다도 훨씬 더 안정을 찾던 중이였어서, 공무원이라는 철밥통의 매력을 갓 알게 되자 마자 그것을 목표로 삼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9급, 7급이 있다고 했고, 5급도 있다고 했다. 5급 공무원이 되려면, 행정 고시라는 것을 봐야 한다고 했다. 반수를 하겠다는 약속, 아니 아버지에 대한 농간을 덮기 위해선 보다 큰 카드가 필요했다. 덕분에 무사히 부담감에서 잠시나마 도망칠 수 있었다. 쉼 없는 도망, 단지 그 뿐이었다는 것을 이미 깨닫고 있었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다.

“공무원을 네가 왜 해?”

망치로 머리를 한대 세게 맞은 기분이었다. 충격이었다. ‘되고 싶은’ 것이 없던 나에게 있어서 너무도 큰 자극이었다. 나는 맹세코 그 날의 거리와 날씨와 공기의 냄새와 땅의 무른 정도와 행인의 많고 적음을 생생히, 모조리 기억한다. 그 거리는 어느 안경점을 끼고 지나는 모퉁이였고, 날씨는 맑았지만 공기에선 쌀 냄새가 났었다. 깨진 회색 타일 바닥을 지나면서 시꺼먼 아스팔트를 맞이하고 있었다. 그 날 은혜형이 던진 그 한마디는 그토록 매섭게 가슴을 후볐다.

“왜?”

목적 없이, 되는대로, 상황에 맞춰서 입학한 대학임에도 현실을 인정하지 못했고, 아니, 어쩌면 현실을 인정하지 못해 도피하듯 시작한 국면을 피하기 위해 원치도 않았던 새로운 목표를 설정했고, 그 목표가 거짓이었음을 무마시키기 위해 새로운 지향점을 꾸며냈다. 그것들을 억지로 창작해 내는 것에는 한계가 있음을 명확히 알고 있었지만, 당장의 부담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렇게도 꾸며댔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질문을 받고서야, 심지어 꾸며냈던 목표마저 나의 성향과 완벽히 달랐음을 깨달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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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

산문 2010. 1. 23. 00:28
적은 기대를 하고 사니 모든것이 기대 이상이다.
모든 것이 기대이상이라 감사할 것도 정말 많다.
김현식의 노래를 언제든 들을 수 있고
금아 선생의 수필을 언제든 읽을 수 있다.
아직 작지만 설레는 가슴도 있다.
더 이상 바랄 것도 바랄 필요도 없다.
바라지 않는 나는 오늘도 작은 것에 감사한다.
요즘 들어 그것이 참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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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사항

산문 2010. 1. 15. 12:26

좋은 글이란 어떤 글일까 라는 큰 질문에 대한 답을 내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나는 이 질문에 한번쯤 대답하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는데, 나는 어찌되었건 글을 쓰는 대가로 돈을 받고 있으며, 그렇다면 부끄럽지 않은 글을 써야 할 책임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섣부른 대답은 절대로 피해야 할 민감한 질문임에 분명하며 일정부분 정답이 나와있기도 한 질문이기에, 약간 우회적으로 대응하고자 한다.

내가 생각하는 우회적인 방법은 약간 질문을 바꾸어 보는 것인데 나는 이 참에 내가 쓰고 싶은 글은 어떤 글일까? 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지고 또 대답도 해보고자 한다.

첫째로 내가 쓰고 싶은 글은 쉬운 글이다. 이는 내용적으로 매우 무미건조하거나 단순함을 뜻하는 것이 아닌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남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써놓은 글을 말한다. 물론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추상적인 글을 쓰는 것도 어렵고 성취감 있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나 개인의 성격도 그렇고 좋아하는 글들의 성격도 그렇고 전반적으로 속도감 있는 글이 내가 바라고자 하는 그것임에 분명하다. 나는 종종 내가 일상을 살면서 느낀 것들을 글감 삼아 적어내려 갈 때가 있다. 공개된 장소에 일상을 담은 글을 쓰는 이의 글이 너무 읽기 어려우면 곤란하겠다는 생각이다. 내용은 진중하고 깊되, 그것을 풀어내는 방식이 편안해졌으면 좋겠다. 내가 좋아하는 글이고 내가 쓰고 싶은 글이다.

둘째로 내가 쓰고 싶은 글은 맞는 글이다. 나는 내 글을 다시 읽어볼 때가 많은데, 종종 어색한 표현이 사용되었거나, 말이 맞지 않은 문장을 만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너무나 쑥스러워, 홍당무 같은 얼굴을 감추지 못하곤 한다. 사실 어법에 맞는 글을 쓰는 것은 대단히 당연한 일이다. 특히나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다. 나처럼 '나 글 쓰는 거 좋아하오.'라고 대놓고 사는 사람에게는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내 글은 종종 그렇지 못하다. 좋은 내용을 풀어내기 위해선 좋은 문장을 구사 할 수 있어야 한다. 좋은 문장을 쓰기 위한 첫 번째 과제는 문장을 맞게 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맞는 문장으로 내 생각을 풀어내고 싶다.

무엇보다, 내가 쓰고 싶은 글은 따뜻한 글이다. 나는 따뜻한 글을 쓰고 싶다. 진실된 글도 좋고, 감성이 충만한 글도 좋다. 하지만 나는 내 진심을 여과 없이 글로 표현하여 읽는 이에게 불쾌감을 주고 싶지 않다. 격앙된 감정이 담긴 글이란, 감정을 강요하는 글이 될 때가 있다. 오히려 본의를 흐릴 수도 있다. 걸러낸 감정, 정제된 진심을 담고 싶다. 희로애락을 담되 따스하게 쓰고 싶다. 따스한 내 글을 읽은 이가, 그것이 즐거운 내용이라면 환하게 웃었으면 하고, 그것이 슬픈 내용이라고 할 지라도 따듯한 눈물을 흘렸으면 좋겠다. 팬은 칼보다 강하다지만, 내가 쥔 팬 자루는 온화했으면 좋겠다. 나의 일상을 진솔하고 따뜻하게 써내고 싶다. 올바른 문장으로, 그리고 누가 읽어도 쉬운 문장으로 나 자신과 나의 감성을, 내 주변과 삶의 발견을 풀어내고 싶다. 어떤 이가 내 글을 읽었을 때, '쉬었다 가는구나.'라는 생각을 했으면 좋겠다. 일로, 때로는 취미로 글을 쓰는 사람에게 그보다 큰 행복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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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것은 고정관념이다. 따라서 나는 첫인상이라는 것을 믿지 않는데, 사람은 좋게든 나쁘게든 변하게 마련이라는 것을 믿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 시간 사람을 만나다보면 만나는 이들에 대한 이미지가 쌓이게 마련인데, 이것은 첫인상 정도의 것이 아닌 대하는 이의 언행, 그리고 그에 대한 나의 감상들이 조화를 이루어 만들어져 가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첫인상을 갖지 않으려 노력하는 만큼 이러한 타인에 대한 이미지는 쉽게 생겨나지 않지만 한번 그것이 구축되면 쉽게 허물어지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노력하는 나는 이것이 일종의 '신의'의 한 면으로 활용한다. 최대한 남의 '이미지'를 불신의 단면으로 전락시키지는 않으려 노력한다.

채무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쓸 것처럼 문장들을 이어나갔지만 꼭 그런 것을 위한 서론은 아니었다. 오늘 사실은 한 친구의 새로운 사랑에 대한 놀라움과 경외를 남겨보고자 한다.

그는 불과 반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그에게 애인이 생기지 않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자랑스러워 하지는 않았지만 크게 나쁘게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는 애인의 자리가 늘 비어있던 만큼 친구들을 사랑했고, 일에 열정을 쏟았다. 사람을 좋아해본지가 오래라며 종종 결과 없는 대화를 나누었다. 왜 그랬는지, 그가 매우 감성적인 친구라는 것을 똑똑히 알고 있음에도 그에게 왜 애인이 없는지 궁금해하지 않았다. 충분히 매력적이고 따뜻하고 인간적이며 대화도 즐겁게 이끌어가거나 받아줄 수 있는 그 친구에게 말이다. 아무래도 그냥 여러 대화들이 곂곂이 쌓여 나 나름대로 어떤 단정을 내린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그가 어느 날, 마음에 둔 이가 있다고 나에게 말했다. 욕조의 물이 넘치는 것을 보고 놀라던 한 철학자가 된 것 마냥 나는 놀랐다. 일종의 발견을 한 것 같은 기분에 잠시나마 취했던 나는, 그에게 진심으로 축하를 건냈다. 그가 누군가에게 우정 이상의 것을 느끼고 그것을 소중해한다는 것 만으로 정말로 기뻤다.

며칠이 지나고 그가 골인했음을 들었다. 그는, 둘이 같은 감정을 갖고 있었음을 확인했고 그 기쁜 사실을 다음날 아침 나에게 전했다. 나는 진심으로 기뻐했고 그에게 축하의 말을 건넸다. 지나치게 추운 한 겨울에, 감상이라곤 모조리 얼어버릴 것 같은 그런 한 겨울에, 그는 로멘스를 즐겼다.

낙엽이 떨어지는 가을이라고 하여 그것이 로멘틱하고, 몸과 마음이 얼어붙을 겨울이라고 하여 그것이 로멘틱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에는 그만의 로멘스가 있다. 빌딩 안에서도 입김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추운 한 겨울, 소중한 내 친구의 로멘스가 나에게 전해지고, 나도 하루 바삐 그런 로멘스를 즐기길 기도하며 웃음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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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인 것

산문 2009. 12. 17. 10:13
노래를 부르는 것을 좋아하는 것 만큼 좋아하는 것은 노래를 듣는 일이다. 다양한 노래를 듣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그럼에도 특별히 진심으로 좋아하고 사랑하는 가수들이 몇명 있는데, 그런 그들의 노래를 들을 때면 아주 행복하여 잠시나마 나를 괴롭게 하는 것들을 잊곤 한다.

기술이 많이 발달한 시대인 지금 그들의 노래를 듣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으나, 그 중 최고인 것은 역시 우연히 듣는 것이다. 길을 가던 중, 레코드 샵에서 흘러 나오는 김현식의 '비처럼 음악처럼'을 듣는 것은, 나에게는 행운과도 같은 일이다. 그 날 만약 비라도 내리고 있다면 더욱 그러하다. 군 시절, 복도를 걷다 화장실에 설치해놓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이문세의 '그대와 영원히'를 들은 일이 있다. 나는 그 노래를 알게 된 후 지금 이때까지 그렇게 아름다운 '그대와 영원히'를 들어본 적이 없다. 사랑하는 음악을 우연히 듣게 되는 것이란, 나에게 있어 그렇게도 행복한 것이다.

버스 안의 라디오에서 그러한 음악들이 흘러나오는 것 역시 매우 설레이는 일이다. 고단한 아침, 웃을 일이 별로 없는 출근길에 흘러나오는 김광석의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는 심신이 지친 나를 위로하고 보듬어준다. 하지만 그러던 와중 버스 벨이 울리는 바람에 그 위로가 끊어지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버스 벨이 울린 뒤 버스 내 광고가 너무 길게 흘러나와 그것이 끝났을 때 노래가 이미 끝나 있거나, 혹은 그 사이에 버스 기사가 라디주파수를 바꿔버리는 것들도 역시 너무도 애석한 일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는 것은 알고 있다.

나는 요즘 팔자에도 없던 아이팟의 이어폰을 귀에 꼽고, 내가 듣고 싶었던 음악을 모두 담아서 어디를 가나 듣고 다닌다. 내가 사랑하는 가수들의 노래도, 내가 단지 즐기는 노래도 모두 들어있다. 하지만 모두 우연인 것만 못하다. 우연히 흘러나오던 노래가 주던 반가움과 기쁨은 그것을 흐르게 하는 주체가 내가 되므로 일부분 사라졌다. 문명의 혜택을 크게 받은 덕분에 소소한 즐거움과 거리를 두게 된 나는 그럼에도 우연인 것들을 포기한 채, 편한 것을 선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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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 2009. 12. 8. 09:40

"이거 쓰세요. 감기 들어요."

어느 날, 지하철에서 내려 버스로 갈아타려고 가는 길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적게 내리는 비가 아니어서 금방 나는 젖어버렸는데, 이미 젖은 마당에 비를 피할 것도 없어 단지 나무 밑에 서있었다. 눈치 빠른 사람들은 언제 일기예보를 경청하였는지, 저마다 우산을 들고 있었다. 우산이 없던 나는 그날따라 그것이 그렇게 서러웠다.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걸어가려는데, 웬 여자 한 명이 택시에서 쫓겨나고 있었다. 고래고래 소리 지르던 그는 결국 택시에서 쫓겨나, 돌담 한구석에 쪼그려 앉아 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도 비는 내리고 있었다.

버스를 기다리며 비를 맞을 때의 서러움이 떠오른 나는 그를 한참을 바라보다, 편의점으로 가서 우산을 사왔다. 그리고 그에게 건넸다.

우산을 건네고 가려는데 그가 쫓아와, 한사코 거절하며 우산을 나에게 되돌려 주었다. 실랑이 아닌 실랑이가 약간 오갔고, 결국 나는 못 이긴 채 우산을 받아들었다. 그는 취했는지, 초면인 나에게 손을 흔들며 "안녕"이라고 인사를 했다. 나는 비를 맞던 내 자신을 생각하며, 한 사람을 위로하려고 했을 뿐인데, 어느새 내 손에는 우산이 들려있었고, 더 이상 비를 맞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

그날은 내 친구에게 정말 억울한 일이 있던 날이었다. 내 소중한 친구는 한 사건으로 인해, 너무나 억울해 했다. 나는 그에게 "그런 걸로 화를 내기에는, 억울해하기에는 너는 너무나 괜찮은 아이다. 가치 있는 아이다. 그러니 울지도, 억울해하지도 말아라."고 말했다. 얼 만큼 그가 그로 인해 위로를 받았을까.

나는 그때, 나의 위로가 충분치 않았음을 인정했다. 단지 달변가의 흉내를 내며 그를 설득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는 위로가 필요하니 나는 설득해서는 아니 되었다. 나는 다짜고짜 그를 서점에 데려갔다. 나 같은 흉내쟁이보다, 더욱 아름다운 글을 쓰는 사람의 책을 선물하고자 했다. 그 책을 선물 받은 그는 진심으로 고마워했고, 그제야 그가 위로를 받았음을, 마음의 상처가 조금은 하얀 무언가로 덮여졌음을 알았다.

순간 나는, 내가 선물한 책의 저서가 쓴 또 다른 책을 전부터 사고자 했음을 떠올렸다. 그리곤 대번에 그 책이 있는 곳으로 가서 두 권을 집어 들고 계산대로 달려갔다. 그 책을 찾을 때 내가 위로한 나의 친구가 나를 도와주었음은 물론이다. 상처받은 그를 위로하고자 서점에 들렀는데, 어느새 내 손에는 평소에 갖고 싶었던 책이 들려있었고, 더 이상 어디에서도 그 책을 갈망하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 우산이 필요한 이에게 우산을 선물하려 했는데, 내 손에 우산이 들려있어 비를 맞지 않아도 되었고, 책이 필요한 이에게 책을 선물했는데, 내 손에 그토록 갈망하던 책이 들려 있었다. 내가 남에게 하려 했던 위로가 나에게 선물을 주었다.

혹자는 "당신이 당신의 의지로, 당신의 돈을 주고 구매한 우산과 책인데 어찌 그것이 '선물'이 될 수 있습니까?"라고 물을는지 모른다. 돈을 주고 물건을 산다는 경제적인 관점에서 보면 전적으로 맞는 말이나, 인과적으로 생각한다면 선물임이 당연하다. 두 번에 걸쳐 크게 깨달은 나는, 내가 누군가의 위로가 되어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또 누군가가 나를 위로하여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신기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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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상

산문 2009. 11. 17. 12:17

세상에는 많은 남자들이 있고, 그들은 각자 다른 취향을 가지고 있을 것이기 때문에, 각자가 바라는 여인상 역시 각기 다를 것이 분명하다. 나도 마찬가지로 나름의 이상향이랄지, 여인상이랄지 하는 것을 막연하게나마 갖고 있는데, 근 몇년 간의 경험으로 그것이 보다 명확해졌기에 한번 적어 본다.

사람은 내적인 것과 외적인 것이 있지만, 나는 인간 이상의 존재는 아니기에 우선 외모가 눈에 들어오는 편이다. 내가 바라는 외적인 이상형은 화려하게 예쁜 모습이 아니다. 난 단연코 예쁨보다는 조화로움이다. 오밀조밀하게 이목구비가 조화가 잘 된 모습이 커다란 눈과 높다란 콧날보다 더욱 아름답게 느껴진다. 지금보다 나이가 적을 적에는 치열이 고르지 못하거나 교정을 한 이들보다는 가지런한 이들을 더욱 흠모했다. 하지만 지금은 각각 나름의 매력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지금보다 나이가 적을 적에도 지금도 나는 눈이 가늘고 긴 여성에게 매력을 느낀다. 그런 여성들이 웃으면서 보여주는 눈웃음이 참으로 아름답다. 선해보인다. 웃는 모습이 환하고 선한 모습을 싫어할 사람은 없다.

외모에 대한 이야기는 더 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어차피 세상에, 내가 외적으로 완벽하게 만족할 사람이 존재하리라는 생각은 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눈이 높은 편도 아니고 까다롭지도 않지만, 여인상을 두고 외모를 기준으로 꼽는다면, 삼라만상을 담은 외모를 지녔다 하더라도 가히 만족치 못할 부분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내 여인이 나와 함께 많이 웃을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웃음이 공유된다는 것은 참 행복한 일이다. 나의 일상에 그 어떤 힘든 일이 있고, 억울한 일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들을 웃음으로 풀어낸다면, 그것들은 능히 견딜만한 일들에 불과할 것이다.

웃음을 공유할 수 있다면 그곳이 공원 벤치여도 좋고, 까페여도 좋고, PC방이어도 좋고, 영화관이라도 좋다. 그곳이 어떤 곳이라도 좋다. 나는 웃음이 삶의 한 이유라고 생각한다. 울고 싶은 날은 있어도 울기 위해 사는 삶은 없다. 나는 나로 인해 누군가가 웃는 것이 좋고, 누군가가 나를 웃기는 것도 좋다. 내가 웃길 수 있는 그 사람이 내 여인이라면 나는 정말로 행복할 것이다. 웃음으로 인해 시간이 가는 속도가 너무나 빨라져 하루 하루가 아까울 지경이라면 그만큼 빛나는 삶이 있을까 한다.

웃음을 공유할 수 있다면 그 김에 취미 또한 공유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렇다고 나의 여인이 나를 만나기 전부터 탁구와 당구, 그리고 노래에 심취해있거나 글쓰는 것을 즐기거나, 패션에 무진 관심을 보이거나 할 필요까지는 없다. 하지만 위의 것들을 좋아하는 나를 그대로 인정해주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가끔씩은 함께 즐겨보려고 노력을 해보았으면 좋겠다. 가끔씩은 탁구장도 가보고, 당구장도 가보고. 함께 노래방에도 가고, 노래에 대한 이야기를 몇시간씩 나누고. 그랬으면 좋겠다. 글 쓰는 것을 즐겨도 좋겠다. 요즘처럼 글쓰기 편해진 세상이 과연 있었을까. 팬과 종이가 없더라도 그보다 흔해져버린 컴퓨터만 있다면 언제 어디서든지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나의 여인이 쓴 글을 내가 읽고, 그에 관한 감상을 말해주고 싶다. 그리고 내가 일적으로든 취미로든 쓴 글을 그가 읽고 평하거나 좋아해주었으면 좋겠다.

나 역시 그가 좋아하는 것들을 기꺼이 인정하고 때로는 그것들을 나도 한번 좋아해보려 노력해볼 예정이다. 나는 이미 가진 취미가 너무나 많기 때문에 새로운 취미를 받아들이는 것이 익숙치 못하고, 그랬기 때문에 과거에 나와 만났던 여인들이 추천해주었던 취미를 나의 것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하지만 남이 나의 취미를 즐겨보고자 하는 마음은, 내가 그의 취미를 공유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생겨난다는 것을 이제는 알았다.

너무 순수하여 연애을 알지 못하지도, 그렇다고 너무 야하지도 않았으면 좋겠다. 어느 것이든 지나친 것은 좋지 않다. 연애를 알지 못하는 것은 단순한 순박한 것이 아닌 새롭게 배워가야할 것들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누구보다 연애를 잘하는 선수도 아니며 그렇기 때문에 좋은 선생님이 될 수 없을 것이다. 나를 잘 다루어 주었으면 좋겠고, 나에게 잘 끌려와주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너무 야하여, 나를 조종하려고 하거나, 거짓을 부린다면 그처럼 싫은 것이 없을 것이다.

나의 힘듦을 함께 공유해주고, 진실된 충고를 해주며 그럼에도 친구와는 달라 절대적인 내 편이 되어 주었으면 좋겠다. 송곳과 같은 충고는 나의 보석과 같은 친구들이 많이 해주고 있으니, 순백색 거즈처럼 나의 상처를 덮어주었으면 좋겠다. 그가 나를 덮어준다면 나 역시, 그를 덮어줄 것이다. 아니, 내가 그를 덮어줄 테니 그가 나를 덮어줄 것이다.

말한 모든 것들은 참으로 과한 바람일 것이다. 어쩌면 누구나 바라는 여인상일 것이며, 누구나 바라는 높은 경쟁율의 여인이 나의 여인이 될 가능성 역시 적을 것이다. 이렇게 이 글을 적는 이유는 내가 그런 여인상에 걸 맞는 이가 되었으면 하기 때문이다. 바라는 것만 많은 이는 바라는 만큼 얻기가 어렵다. 허나 바라는 정도를 정확하게 알고 그것을 얻기 위한 합당한 노력을 한다면 어찌 세상이 그 노력을 매번 매몰차게 배반하겠는가 하는 생각이다. 그를 만나는 것이 내 생활이 되기 바라며, 나를 만나는 것이 그의 생활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 그리 크게 못난 욕심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Posted by 심준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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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어느 날

산문 2009. 10. 20. 10:32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10월의 마지막 밤을"

'이용의 잊혀진 계절 중에서'

제철 과일이 있고 제편의점 초콜릿이 있듯 노래도 제철 노래가 있다. 겨울에 듣는 김민기의 '가을 편지'처럼 때 늦은 것이 있을까? 김현식의 '봄 여름 가을 겨울'처럼 이름 그대로 사시사철 상록수 같은 노래도 있지만, 마찬가지 이름 그대로, 권성연의 '한 여름 밤의 꿈'은 수박이 딸린 평상에서, 이용의 '잊혀진 계절'은 찬바람 부는 창가 옆의 책상에 엎드려 라디오로 듣는 것이 제맛이다. 하지만 하필 - 신나야 한다는 강박을 전제로 하는 여름을 제외하곤 - 가을철 노래가 유난히 시절을 타는 것은 참으로 의문이 가는 일이다. 감히 추측을 해본다면, 그 중 한 가지 이유는 가을의 제철 노래들이 참맛을 내는 시간이 짧음일 것이다. 다른 이유는, 스산한 가을은 참 저린 계절이기 때문일 것이다.

얼마 전에 친하게 지내는 형과 치킨에 맥주를 기울였다. 만난 시간이 9시 반이고 헤어진 시간이 새벽 2시경인데 그저 어중이떠중이들처럼 홍대를 거닐다 고작 한것이 치킨에 맥주였다. 그날따라 치킨이 짜더라. 나눈 속없는 대화들이 아련했다. 가을에 나누는 대화는, 그 대화의 주제가 이별이라면 유난히도 그 맛이 진하다. 그것이 쓴 것이라면 더욱 쓰고 짠 것이라면 더욱 짜다. 신기할만큼 그러하다. 그날도 그랬다. 치킨의 맛은 튀기는 사람의 실수 탓이겠지만 시고 짭짤한 대화는 가을 탓이었으리라. 낮에는 높고 푸르렀을, 허나 그 순간은 캄캄했을 뿐인, 가을 하늘 아래가 대화를 그리 만들었던 것이리라.

달력이 붉은 추석이 기다려진다곤 하나 그 마저도 슬픈 가을 하늘 아래에 있다. 가을에는 외로운 사람이 더 외로워지고 슬픈 사람이 더 슬퍼진다. 가을철 연인들의 서로가 더욱 돈독해지는 이유는 각자가 외로워 더욱 서로에 기대고 싶기 때문이리라. 스산한 가을 바람은 서럽진 않지만 슬프다. 그 가을 바람은 결국 점점 더 차가워지고 결국에는 겨울 바람으로 변할 것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가을이 가을이 아닌 더위와 추위를 잇는 길목으로 변해버린 지금, 마음이 황량해져 기댈 곳이 전무하게 느껴지는 지금, 이 가을의 높은 하늘은 나에게 아무런 위로가 되지 못하고 있다.
Posted by 심준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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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자신에게는 관대하고 남에게는 야박한 사람
- 내가 잘못한건 허허실실, 남이 잘못한건 인신매매 유괴범 취급하는 사람은 되지 맙시다.

2. 입 밖으로 내뱉은 말을 왠만하면 안 지키는 사람
- 내가 한 약속은 세상에서 가장 가볍고 어겨도 되는 약속입니다. 라고 광고하는 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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琴兒禮讚(금아예찬)

산문 2009. 10. 12. 00:12

琴兒禮讚(금아예찬)


참으로 존경하는 이를 꼽으라고 하면, 꼽을 이가 적어 목이 마른 요즘, 그나마 나에게 단비가 되는 이가있으니 그는 바로 금아 피천득 선생이다. 비틀즈의 음악을 유물로만 접한 것은 동시대에 살아보지 못했으니 억울하지 않으나, 그의 생전에 내가 그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은 참으로 애석하여 억울하기 까지 한 일이다. 그만큼 지금, 그에 대한 나의 사모는 아주 열렬하다.

그를 처음 알게 된 것은 물론 교과서를 통해서이다. 수천 금괴와 같은 글을 소개한 교과서지만 나에게 피천득 선생을 '금아'라고 부른다는 사실조차 알려주지 않았다. 야속한 일이다. 그의 팬이 되길 자처한 나는 실은 그럴 자격이 없는 이였다. 그럼에도 교과서의 지은이를 탓할 수 없는 이유는 그 책이 아니었다면 피천득 선생을 애초에 알지도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주 알량한 글 기술을 빌려 돈을 벌고 있는 나는 아주 깨끗한 글을 읽지 않으면 좋은 글을 쓰기 어렵다. 상업 글꾼인 나는 그렇기 때문에 '백석 전집'이라든지 하는 것을 주로 읽는데, 이라든지 하는 것 중에는 저 유명한 피천득 선생의 수필집인 인연이 있다. 실은 가장 아끼는 책 중 맨 위 꼭짓점을 오래도록 지키고 있던 백석 전집을 밀어낸지 오래되었다. 그것은 피천득 선생의 글은 깨끗하기도 하거니와 재미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의 글은 문장이 짧아 속도감이 있고, 곳곳에 읽는 재미를 위한 기술을 두어 지루하지 않다. 쉽게 읽히는 글을 쓰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만일 그가 그의 글들을 쓰는데 크게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다면 그것은 나같은 범인들의 기를 크게 죽이는 일일 것이다. 나는 그가 그의 글을 쓰면서 수만번 퇴고했기를 기도한다. 그만큼 그의 글은 재미도, 완성도도 모두 충만하다. "콜리지는 그를 가리켜 '아마도 인간성이 창조한 가장 위대한 천재'라고 예찬하였다. 그 말이 틀렸다면 '아마도'라는 말을 붙인 데 있을 것이다.(수필집 '인연' 중 '셰익스피어'의 맨 마지막 문장)"라는 문장은 그의 문장 중 내가 꼽는 가장 재미 있는 것이다.

얕고 편협된 상업적인 글쓰기가 업인 나이기에 그가 보여주는 대담한 글솜씨에 집중할 때가 있다. 그 집중을 어지럽히는 것이 단 하나 있다면 그것은 글솜씨가 펼치는 즐거운 내용일 것이다. 그는 그가 팔불출 아버지임을 숨기지 않는 대신에 딸에게 손수 편지를 쓰는 로멘티스트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것을 읽는 것이 정말 즐거운 나머지 떠올리기 뭣한 군시절 나에게 온 아버지의 편지가 떠오르기도 하고, 나도 나중에 내 자식에게 편지를 써주어야 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의 딸이라고 하여 어찌 사춘기가 없었을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어찌 갈등이 없었겠냐만은, 그럼에도 그들이 그 갈등들을 잘 해결했을 것임은 고민의 여지가 없는 일이다. 모든 것은 글에 나와있다.

그는 그를 아주 평범한 사람으로 묘사하며 때로는 반성하고 그 반성을 글을 통해 내보일 때도 있다. 그런 반성 중에는 나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진중한 것들도 있고, '술을 좀 마실 줄 알았더라면'하는 가벼운 것들도 있다. 어느 것이건 따사로운 것은 지나침이 없기 때문이다. 그의 글은 찬란하지는 않지만 따뜻하다. 진솔하되 걸러내어 낯붉힐 일도 없다. 그는 술은 하지 못하나 담배는 가끔 피우고, 젊은 여인의 아름다움을 칭송한다. 나는 그와 일면식이 없으며 따라서 대화를 나눈 적도 없고, 누가 나에게 그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려준 적도 없으나, 나는 그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고 있다. 과거와 현재를 책이 이어준다는 말을 나는 그의 글을 통해서 실감한다. 그에게 나를 알릴 도리가 없는 것이 야속하나, 욕심은 언제나 화를 부른다. 그가 도산 안창호 선생을 존경하는 만큼 내가 그를 존경한다 말하기 어려운 것은, 그가 그의 존경심을 표현함에 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너무나 적기 때문이다. 허나 표현은 미처 덜하다 하더라도, 마음이라도 그만한 것은 실로 대단히 확실하다.

Posted by 심준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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