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에 해당되는 글 22건

  1. 2009.08.22 090822 오전 10시경 일기 4
  2. 2009.08.07 정답이 무엇인지는 알고 있다.
  3. 2009.06.10 교과서
  4. 2009.05.29 맞아 죽을 각오로 하는 말
  5. 2008.12.14 서점에 다녀왔다. 11
  6. 2008.11.27 나의 하루 9
  7. 2008.10.19 이해 1
  8. 2008.08.27 마감 4
  9. 2008.08.17 유약함 3
  10. 2008.07.17 직장인으로 살아간다는 건 6

어머니 아버지는 성가대 수련회를 가시고

간만에 자유를 만끽해보려 했으나 몰려오는 피곤에 11시 취침.

아침 7시 30분에 기계처럼 눈을 뜨고 거실로 나와서 아침 드라마를 보기위해 TV를 켰는데

습격이 일어났다.

바로 개미의 습격.

태어나서 처음으로 1층 빌라에 살아보는데, 확장공사해서 바깥과 바로 맞닿아있는 베란다의 문틈으로 개미가 습격한 것. 대략 서울 인구수 정도 되는 개미가 열지어서(그나마 다행이었다..) 식탁까지 점령, 바깥으로 열심히 음식을 나으고 있는 것을 발견한 나는 공포에 떨어야 했다.

아, 전생에 내가 개미 무리를 밟아죽인적이 있던가, 출근은 해야겠고 개미의 습격은 막아야겠고, 고민하던 차에 청소기를 꺼내들었다. 강에 맞춰진 청소기는 시원하게 개미 떼를 흡수했고 잠깐이나마 개미의 행렬이 끊기는듯 했다.

하지만 출근 준비를 하고 다시 거실로 나오니 행렬은 더욱 진해졌으면 진해졌지 사라지지 않았던 것. 패닉상태에 빠진 나는




그냥 출근해버렸다.

우리집 미안, 장군이 미안.. 엄마 곧 올거야..

Posted by 심준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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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이 그 진정한 기능을 다 하고자 한다면 배제해야 할 것은 상업성, 그러나 벼락부자의 취미생활이 아닌 다음에야 돈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상업성이 반드시 필요한 독배라고 한다면 그것을 중화 시켜줄 것은 크리에이티브한 기획일 것이다. 애초에 매거진은 동향을 전달함과 동시에 새로운 창조물을 만들어내면 그걸로 끝이다. 전달 하고자 하는 것을 전달하고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 그것이 매거진이다. 돈 걱정 없다면, 여러 독자들 끌어모을 것 없이 고정 타겟층을 두고, 그냥 정말 하고 싶은 것만 하면 된다. 그쪽이 더 편하고 어쩌면 그쪽이 더 어렵다.

알고 있다. 무신사는 매우 상업적인 형태를 띄고 있다. 분명 스폰서 샵들에 관련된 정보가 대부분을 차지 하고 있다. 그러한 정보 전달 하나 하나가 무신사의 상업활동이다.

상업활동은 매거진의 순수성을 타락시킨다. 다시 말하지만 방법은 하나다. 창조적인 기획물만이 정답이다.

피눈물나는건,

창조적인 기획물을 만들어낼 시간적, 물질적 여유가 없다는 것.

무신사의 자립성이 든든해져, 원하는 기획, 하고픈 기획을 짜내기 위한 회의 때문에

다시금 3시간씩 원탁에 앉아보고싶다.

Posted by 심준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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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

산문 2009. 6. 10. 17:50

교과서에나 나올 법한 것 등의 비유로 고루함의 상징이 되어가고 있는 교과서지만 교과서 문학책 안에 들어있는 글들은 그렇게 보석같은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 나는 그 중 2명의 작가를 좋아하고 1명의 작가를 이해하고자 노력하는데 좋아하는 두명의 작가는 백석과 피천득이요 이해하고자 하는 작가는 이상이다.

방언 표준어를 가리지 않고 표현의 장을 넓히며 시라는 것이 가지고 있는 어떤 형식을 파괴한 시인인 백석과 수필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라는 정의와 더불어 잘된 수필의 예까지 스스로 들어준 피천득, 그리고 아직 이해하기에 버거운 이상은 항상 글 쓰는 내 마음 속에서 한 지표가 되어 왔다.

그런데 항상 백석과 피천득을 존경(이상은 솔직히 존경보다는 호기심의 대상이다.)한다고 떠벌리고 다니기는 하는데 정작 그들에 관련된 것이 하나도 없는 것이 부끄러워 작년에는 백석 전집 현대판 한권을 그리고 올 초에는 2009 이상 문학상 작품집을 그리고 얼마 전 마지막으로 피천득의 수필집을 사버렸다. 사실 한번에 싹 다 사도 좋았겠지만, 머리가 나빠서인지 그때마다 지갑이 세권의 책을 부담하기에 가벼웠던 것인지 이제야 세권을 사버렸다. 백석의 촌에서 온 아이를 읽고 이상 문학상을 탄 이들의 단편 소설을 세번씩 읽고 피천득이 내리는 수필의 정의를 살피는데 왜 그렇게도 나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없어지고 내 손에선 젖비린내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교과서에 나온 이들은 고루한 이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그 시대 그 누구보다 반짝거리던 이들이었고 그들의 문학이야말로 예전과 지금 나중 모두를 끌어 안을 수 있는 것이었다. 왜 그때는 몰랐을까. 국민학교 3학년 '읽기'수업시간, 수업은 듣지 않고 읽기 책을 맨 뒷까지 남김없이 읽어버렸던 그때의 호기심은 머리가 커버린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 회색빛으로 변해버린 것이 아니었을까. 사춘기라는 세글자로 미화된 알량한 반항심이 보석같던 교과서의 빛깔에 지문과 먼지를 입혀 뿌옇게 만든 것이 아니었을까. 추측을 확신으로 만들어 준것은 더 나이들어 읽어본 교과서의 주인공들, 그들의 작품들이었다. 백석과 피천득, 그리고 이상 그들에 갖는 내 존경심과 호기심이 나를 더 경쾌하게 만들어주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글을 마친다.




시간 없다고 핑계대지말고 책 샀으면 빨리 빨리 읽어버리자는 자기 반성을 담아 쓰는 글입니다.
Posted by 심준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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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자살은 안돼.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

안되는거야.

Posted by 심준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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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 다녀왔다.

산문 2008. 12. 14. 19:22
1. 전부터 가지고 싶었지만 서점에 갈 시간이 안됬네 마네 하는 각종 뻔한 핑계 덕분에 사지 못했던 피천득 선생의 인연을 읽어봤다. 사실 사려고 했는데 좀 읽다가 두고 '간만에 왔으니 구경이나 한바퀴 하다 와서 사야지' 라고 생각했는데 잊어버리고 한바퀴 돈 후 그 길로 나가버렸다. 무서운 건망증이다. 피천득 선생의 수필이야 워낙에 어디에 책을 던져놔도 뚫고 나오는 빛 덕분에 찾아내기 쉬운 존재이긴 하지만 안 읽어본 이들도 명성만으로 할 수 있는 말이니까 그런 말은 하고 싶지 않다. 뭐, 이미 한건가. 기사를 쓸 때에 항상 경험이나 책에서 읽은 이야기들을 단골로 꺼내어 서론을 풀어내는 나로서는 '명작수필'에 대한 공부가 시급하여, 강남 교보문고 카펫 바닥에 주저 앉아서 읽어본 선생의 글은 교과서와 같았다. 이런 저런 자신의 일상을 몇개 던져놓더니 그 안에서 인간사의 한 진리를 관통시키는데, 혀를 내둘렀다. 그냥 감상했다면 감동하고 웃음 지었을텐데 공부하는 마음으로, '절대강자'의 실력을 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눈에 불을 켜고 읽었더니 그냥 주눅들었다. 이러자고 그런건 아닌데. 사왔더라면 더 좋았을텐데 선생의 글 읽었다고 내 건망증이 좋아지는 것도 아니고 이놈의 건망증은 언제쯤 고쳐지려나.

2. 또 다른 바닥에 앉아서 잡지 '그래픽'을 읽었다. 어떤 디자이너의 인터뷰에 이런 내용이 있더라.

"폰트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어차피 보고 싶은 내용이면 독자는 다 읽는다."(내용 추림)

잡지 만들면서 폰트의 중요성에 대해서 꽤 많이 통감했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폰트 디자인 하는 사람은 폰트의 가시성에 대해서 별 생각안하고, '글만 좋다면야 뭐,'이런 입장이니 약간 허탈했다. 각자 입장 차이가 있겠고 그 입장들이 폰트를 만드는 입장과 폰트를 사용하는 이들이 서있는 위치와 연결된다면 당연한 차이겠지만. 하나 확실한건 굴림체든 듣보잡 새로운 폰트든 '글'이 좋아야 한다는 것. 손이 떨린다.

3. 간만에 잡지들을 쭉 흩어봤다. 사실은 브로큰세븐 볼륨1을 사고 싶어서 너어무 뒤늦게 찾아간 서점이었는데 품절찍고 없더라. 나름대로 홍보를 해주고 싶은 마음에 눈에 보이는 모든 검색대에서 브로큰세븐을 검색해놨다. 한명정도는 더 봤겠지. 그런데 이런 저런 잡지들을 보고 있는데 저절로 레이아웃이나 구성 이런걸 보게 됐다. 이건 뭐, 꼴랑 두번 내본 놈이 먼 소리냐 하겠지만 아무튼 그랬다.

솔직히 말하면 잡지할 때 많이 힘들었다. 항상 남들에게 하는 소리지만 난 창조적이지 않고 때문에 잡지를 하면서 좋은 기획을 내지 못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패션 쪽 전문인력이 아니기 때문이긴 하겠지만 그 외적으로도 뭔가 신선한 기획을 내지는 못했으니 핑계는 통하지 않겠지. 오히려 취재하고 섭외하고 글 쓸때 편했다. 기획 회의할 때면 많이 떨렸다. 오늘은 뭐로 웃겨야 할지 고민해야 하는 개그맨의 심정이 이런걸까?

잡지할 때는 늘 이런 저런 잡지들을 보면서 살았는데 무신사에 전념하곤 그러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서점에서 잡지들을 쭉 봤는데 눈시울이 조금 뜨거워지더라. 잡지를 할때 배운 많은 것들을 지금 무신사를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잡지가 하고 싶어서 죽겠다'라는 생각아니지만 밤새워 마감하던 기억이 아련하긴 했던 걸까. 알지도 못하는 별 잡지를 읽어보다가 느낀건데

난 잡지만드는 것을 꽤 좋아했던 것 같다.

무신사에서 더 멋지게 끌어내봐야지. 웹'진'으로서의 무신사는 이제 시작이니까. 난 과연 시간싸움에서 이길 수 있을까.
Posted by 심준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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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하루

산문 2008. 11. 27. 13:23

브로큰세븐 매거진 에디터's 레터에 썼던 글인데 잡지에는 편집 관계로 팍팍 자체 감량을 치뤘기에 블로그에라도 원본 버전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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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도 7 15분에 일어났다. 나이를 아무리 먹으면 뭐하나, 25살 먹고도 아직 아버지께서 깨워주신다. 아버지께선 이미 샤워도 하시고 이런 저런 준비도 마쳤다. 내년이면 환갑이신데 말이다. 오늘도 아침은 토스트에 계란이다. 우리 집의 아침은 토스트에 계란 아니면 토스트에 소시지, 아무튼 토스트에 무언가다. 아침에 먹는 토스트를 가장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침에 만드는 토스트가 가장 차리기 쉽다는 것은 알고 있기 때문에 군소리 없이 먹는다. 그것도 7 15분에 정상적으로 일어났을 때 얘기다. 10분만 늦게 일어나도 어머니가 일찍 일어나서 졸린 눈 비벼가며 눈꼽으로 만드신 그 토스트마저 짤 없이못 먹는다. 그럴 때는 식사를 생략한 모든 과정을 대충대충 한 체, 숨 한번 겨우 쉬고 바로 오늘 신을 신발을 고른다.

 

당신의 출근길에 나를 태워주시는 아버지 덕분에 전철을 타러 갈 때는 부자지간 둘이지만, 전철을 기다릴 때는 여럿이 함께다. 모두들 알고 있다. 서로 이 시간 때에 늘 얼굴을 마주친다는 것을. 늘 한결같이 아침마다 만나는 사람들이기에 어느덧 패밀리의식이 생긴 걸까? 어느 날 친구에게 말했다. ‘너네 전철역에선 어떤 사람들이 타니?’ 말해놓고 서로를 바라보다 한참을 웃었다. ‘니네 전철역인지, ‘너네 전철역인지 그런 것이 어디 있느냐면서, 그리고 나의 멍청함을 동시에 탓하면서 말이다. 내가 기억하는 것만큼 그들도 나를 기억할까? 나는 몇몇을 정확히 기억한다. 서구적인 얼굴이지만 그에 반해 키는 밋밋한 그녀, 그녀는 주로 치마를 입을 때 무릎 아래로 내려오는 것을 입는데 그럴 때면 걷는 뒷모습이 너무나 귀엽다. 어깨가 넓고 이목구비가 시원시원한, 그리고 내가 내리는 역까지 함께하는 양복쟁이 동년배(로 보이는)남자. 아마 이런 친구라면 분명 여자친구가 줄을 지어서 있겠지. 마찬가지로 내가 내리는 역까지 함께하는 멋쟁이 중년 아주머니. 이 아주머니의 젊은 시절은 굳이 상상하지 않아도 눈에 선하다. 분명 남자 여럿 울렸을 것이다. 아니면 말고, 그 시절 남자들은 나와 취향이 다를 수도 있으니.

 

그럼에도 서로 인사 한번 하지 않는 친구들과 헤어지면 갑자기 혼자가 된다. 전철역에서 사무실까지는 도보로 15분 거리에 있다. 5분이면 도착하는 신사역에서 내릴 수도 있지만 갈아타고 조금 돌아야 하는 것은 물론 심지어(?) 환승까지 해야 한다. 비록 사무실에서 더 먼 역에서 내리지만 일찍 내리는 덕분에 지각은 하지 않는다. 평소보다 3분 늦을 것 같으면 조금 빨리 걷고, 5분 늦을 것 같으면 뛰면 되니까. 조금 힘들어도 늦는 건 별로다. 사실 질색이다.

 

사무실에 짐을 두고 바로 편의점으로 간다. 빵 한쪽에 계란 하나론 배가 차지 않으니까 말이다. 25살 남자에게 애매한 양의 아침은 과식의 지름길이다. 충분히 먹고 또 먹게 되니 말이다. 꼿꼿이 서서 땅을 봤을 때 엄지발가락이 안 보이는 수준은 아니지만 새끼발가락은 간당간당하다.  성인병 직행열차를 타기 위해 티케팅 중인 나에게는 말려줄 그 누군가가 필요하다. 이러다 그 어떤 누구라도 봐주기 힘든 체구가 될지 모르니까. 심각김밥과 주제에 살 뺀다고 고른 콜라제로를 먹고 나면 시계바늘은 9 15분을 가리킨다. 아버지가 깨워주신 그 시간부터 단 2시간 지났을 뿐이다. 짧은 시간이지만 꽤 많은 일이 일어난다. 하루는 24시간, 남은 22시간 동안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대략 예상이 가능하다. 모르긴 몰라도, 분명 꽤 사랑스러운 순간들일 것이다. 일어난 순간부터 자리에 앉을 때까지 꽤 행복하게 하루를 시작했으니 말이다.

Posted by 심준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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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

산문 2008. 10. 19. 05:35

그렇기 때문에 일방적으로 가치 판단을 해버리는 것은 너무도 위험하고 난잡한 것이다.

쉽게 말할 수 없고 복잡하게 말해봤자 어느 정도 이상 꼬아낼 수 없는 다시 말해 어지간한 일들에는 일방적으로 생각하면 안된다. 살인 강간 강도 등으로 대변되는 객관적 범죄 사실이 아니면

 

우리는 서로를 이해해야할 필요가 있다.

Posted by 심준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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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감

산문 2008. 8. 27. 20:01

국내 최대의 온라인/오프라인 미디어, 광고대행업체 그레이큐브의 오프라인 매거진 BROKENSEVEN MAG.의 창간호의 마감 작업이 끝났다.

그레이큐브는 현재 11명의 직원들이 함께 숨쉬는 유기체지만 편집부는 단 6명. 임상훈 편집장님을 필두로 이문지 에디터, 김지나 디자이너, 윤시영 디자이너, 정후영 포토그래퍼 그리고 나, 심준섭 에디터가 그 6명이다.

모든 것이 어색했다. 나는 처음이었다.

그러니까 무엇이 처음이었는고 하니, 나는 내가 애초에 '글쓰는 일'을 하기 때문에 그냥 '글만' 쓰면 되는줄로 알았다. 하지만, 글을 쓰는건 제 2, 제 3의 문제였다.

잡지에서 가장 중요한 줄로만 알았던 글을 두 번째 세 번째로 밀려나게 했던건 '무엇을 쓰는가' 다시 말하면 기획이다.

기획이 있어야, 글이 나오고 사진이 나온다. 나의 한계는 바로 그 기획에서 나온다.

종종 하는 말이지만 나는 창조적이지 않다. 아, 이러면 간지가 안살지. 크리에이티브하지가 않다. 뭔가가 머리속에서 번뜩이는 스타일이 아니다. 작은 소스를 크게 만들 수는 있지만 그 소스를 만드는 것이 쉽지가 않다. 그리고 억지로 짜내서 만든 소스도, '그닥'일 경우가 많다.

훈련으로 가능하다고는 하지만 사실 가능할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나에게 매우 다행인 것은 내 곁에는 앞서 말한 나 외의 5명이 함께 있기 때문이다. 잡지를 함께 만들었다고는 하지만 그들이 없었다면 가능했을까. 내가 없었다면 가능했겠지만 그들 중 단 한명이라도 빠졌다면 창간은 불가능 했을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들은 최고다.

나는 어서 우리가 최고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들은 최고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 나는 아직도 블로그에서 '나'라는 표현을 쓸 수 있는것 만으로 숨통이 트이는 초짜 중의 초짜다.

새로운 시작을 하는 오늘이 왔다. 시간가는 줄 몰랐던 요 며칠이 지나고 오늘이 왔다.

없던 감기가 걸리고, 수면 부족으로 쩔어있고, 그동안 마셔댄 바카스와 비타500 때문에 볼일볼때마다 카페인이 나오는 기분이다.

더 아파도 되고, 더 못자도 되고, 자양강장제 10리터씩 먹어도 좋으니까

그냥 더 좋은 잡지 나왔으면 좋겠다. 사실 나같은건 아무래도 좋다.

Posted by 심준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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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약함

산문 2008. 8. 17. 10:37

musinsa.com 이라는 고품격 버라이어티 스트릿 패션 포탈 커뮤니티에서 글을 쓰고 있는 심준섭이라고 합니다. 아 여러분 모두 알고 계시죠.

간단하게 말했다 시피 나는 지금 글을 쓰는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다. 글을 쓰고 그 댓가로 돈을 받으니 '일'이라고 해도 오는 패스 인터셉트할 사람 많지 않다고 본다만, 오늘의 인터셉터는 나라고 생각하니 쓴물이 올라온다.

내 자신이 나의 직업에 대해서 불신을 표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내가 지금 '글'을 쓰고 있는 것이 맞는가 하는 의문과 맥을 같이 한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글은 '남들에게 공개해도 될만큼 깔끔하며 고등학교 재학/졸업의 학력을 갖춘 이들과 함께 공유할 만큼 이해가 명확하게 이루어지며 마지막으로는 읽는 이가 읽다 졸지 않도록 문체 등에서 충분한 재미를 주는, 그런 글을 말한다. 뭐, 배운게 도둑질이고 얻은게 직업병이라 줄줄이 풀어서 썼지만 결국 내가 써야하는 글은 '쉽고, 재미있으면서 바른 문장으로 기술된 글'이다. 그래야 나는 '글'을 쓰면서 '돈'을 받을 자격이 생긴다.

그런데 한가지를 추가해야한다.

나는 많이 써야한다. 나는 순수문학을 하는 청년도 아니고 기타치면서 동전을 받으면서 틈틈히 가사를 만드는 음유시인도 아니다. 나는 그때 그때 나에게 오는 정보를 어느 정도 포장을 해서 곧바로 올려야 하는 한 웹진/오프라인 매거진의 에디터의 신분(과격할만큼 과분한 세 글자다.)으로 있다. 우리나라, 아니 세계는 지금 정보의 홍수 위에 노아의 방주를 타고 있다. 나는 정보와 시간이라는 거대한 두 명사들과 전쟁을 벌인다.

시간과의 싸움에서는 잘 지지 않는다. 올려야 할때 올리고 사람들이 읽어야 할 타이밍에 올린다. 그러나 내 고독한 싸움은 시간과의 관계로는 도무지 끝나지를 않는다. '질'이라고 쓰면 '간지'가 안사니까 영어를 써야겠다. 나는 빠르게, 제 때 글을 올려야 하는 의무가 있지만 동시에 '퀄리티'있는 글을 써야할 의무도 있다. 여기서 말하는 퀄리티는 앞서 기술한 '글'의 정의와 상통한다. 나는 빠르게, 많이, 그리고 잘 써야한다. 그게 누군가가 나에게 돈을 주는 이유다.

그런데 나는 너무도 유약하다. 약한 글을 쓰면서도 약해보이기 싫어한다. 그것이 내 글에서 종종 비문이 발겨되는 가장 큰 이유겠다. 간결하게 툭툭 치고 나가면 되는데 그것이 어렵다.

칭찬에 약한 것도 죄다. 칭찬에 입이 벌어져 닫을 줄 모르고 '뽕'한사발 한마냥 좋아서 어쩔줄 모르고, 덕분에 나는 내 글에 대한 맞춤 양복같은 알맞은 비판에도 울그락불그락한다. 집중해서 내 글을 읽어주었다는 징표이며 내 글에 애정을 가지고 있다는 상징임에도 불구하고 잠시동안이지만 서운해한다. 서운해하면 안되는걸 알면서도 그냥 서운하다.

버릇이 될까 두렵다. 잘못을 쉽게 인정하지 않는 내 모습으로 변할까 두렵다. 잘못했으면 잘못했다고 하면 되는데 왜 거기에 사족을 다나, 변명을 하나. 나는 약하다.

약한 내가 강해지기 위한 보약에는 숭고한 비판과 분별된 사랑이 있겠다. 눈이 빠질 법한 집중과 건방져 보일 법한 올곧음이 있겠다.

약한 나는 강해지기 위해 오늘도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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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알아듣지도 못하는 잡쓰레기같은 시도 아닌 뭣도 모르는 주제에 남얘기 씨부린 리뷰도 아닌 누구보다 내가 가장 잘 아는 내 이야기를 써봐야겠다.

휴학을 4년째 하고 있는 나로서는 이제는 학교라는 곳이 더욱 어색하고 밑도 끝도 없이 배우는 것이 아련하기만 하다. 어떻게 해서든 전공을 살리지 않고 내 나름의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살아가고 싶은 욕구가 나에게 잠재와 드러남 두가지 가치 위에 오롯이 서있기 때문일까. 실제로 나는 전공을 살릴거냐는 질문에 단 한번도 살리겠다고 자부한 적이 없다. 내가 학교를 다니는 이유는 이 사회에서 대졸생으로 남고 싶기 때문이라고 당연하다는 듯 허장성세에도 찌든다.

도피하다 시피 시작하던 알바와 내가 하고싶은 일을 간이라도 보겠다고 들어온 지금 내가 들어 앉아있는 직장. 하고싶은 일을 하니 행복해요, 라고 자조하고 싶지만 그건 쉬운일이 아니다. 세상은 내가 지구에서 가장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어도 마냥 행복하게만은 내버려두지 않는다.

하고싶은 일 중에서도 하기 싫은일이 있다. 이유는 한가지다. 내가 하는 일이 과거에 단지 '하고 싶은 일'이었을 때는 그 일에 대한 진행-프로세스-에 대해서 무지했기 때문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려면'그 중간에 무엇을 어떻게 얼마나 잘 신속하고 정확하고 적확하고 명민하고 뚜렷하게 해야하는지 나는 도무지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이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 수는 없다. 하고 싶은 일을 위해 해야할 일을 안하고 단지 꿀맛같은 포인트만 발라먹겠다고 하면 그건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다. 놀고 먹는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놀고 먹으면서 남에 돈 먹겠다는 심보는 도둑놈 심보다. 나는 도둑놈은 아니다.

그런데 머리로는 알면서도 게으름의 관성이 나에게 주는 딜레마는 이만 저만이 아니다. 아마 모두가 이런 딜레마를 느끼고 괴리에 빠져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렇게 믿지 않는 이상 자위도 불가능하다. 이것을 해야하는지 저것을 해야하는지 명확히 알고 있으면서도 그리하지 못한다. 아니, 아니한다. 이유를 파헤치면 시작은 하나다. 나는 게으르다. 처방을 내려야 한다.

이 시대에 직장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단순히 먹고 살기 위해 남에게 월급을 받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직장이라는 것은 지금은 나의 현실이지만 지나고 나면 나의 경험이고 나의 경력이 된다. 엎어지랴 뒤처지랴 속된말로 존나게 열심히 하는 이들이 있지만 그들은 무엇을 보고 있을까. 쌓여만 가는 자신의 경력일까 아니면 이 안에서 무언가를 이루겠다는 야망일까. 내 안에는 무엇이 있을까.

개인 적으로는 내가 이 안에서 무엇을 이루겠다는 생각이 더 크다. 다음을 생각하고 일하지는 않는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한키 한키에 기백을 실어 나른다. 하고 싶은 일도, 해야 하는 일도, 심지어 하기 싫은 일도 '할 수 있는 일'로 바꾸어서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내가 어릴적부터 꾸던 꿈은 어떤 직장을 다니는 사람이 아니고 그냥 어떤 사람이니까. 나는 직장인으로 살아가면서 어떤 사람이 될까. 아직은 알 수 없지만 하나 확실한 것은 그때의 나는 통렬한 내가 되어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렇기 때문에 나는 오늘도 글을 쓴다. 쓰고 싶은 글이건 안쓰고 싶은 글이건 읽고 싶은 글로 만들기 위해.

Posted by 심준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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