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인 것

산문 2009. 12. 17. 10:13
노래를 부르는 것을 좋아하는 것 만큼 좋아하는 것은 노래를 듣는 일이다. 다양한 노래를 듣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그럼에도 특별히 진심으로 좋아하고 사랑하는 가수들이 몇명 있는데, 그런 그들의 노래를 들을 때면 아주 행복하여 잠시나마 나를 괴롭게 하는 것들을 잊곤 한다.

기술이 많이 발달한 시대인 지금 그들의 노래를 듣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으나, 그 중 최고인 것은 역시 우연히 듣는 것이다. 길을 가던 중, 레코드 샵에서 흘러 나오는 김현식의 '비처럼 음악처럼'을 듣는 것은, 나에게는 행운과도 같은 일이다. 그 날 만약 비라도 내리고 있다면 더욱 그러하다. 군 시절, 복도를 걷다 화장실에 설치해놓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이문세의 '그대와 영원히'를 들은 일이 있다. 나는 그 노래를 알게 된 후 지금 이때까지 그렇게 아름다운 '그대와 영원히'를 들어본 적이 없다. 사랑하는 음악을 우연히 듣게 되는 것이란, 나에게 있어 그렇게도 행복한 것이다.

버스 안의 라디오에서 그러한 음악들이 흘러나오는 것 역시 매우 설레이는 일이다. 고단한 아침, 웃을 일이 별로 없는 출근길에 흘러나오는 김광석의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는 심신이 지친 나를 위로하고 보듬어준다. 하지만 그러던 와중 버스 벨이 울리는 바람에 그 위로가 끊어지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버스 벨이 울린 뒤 버스 내 광고가 너무 길게 흘러나와 그것이 끝났을 때 노래가 이미 끝나 있거나, 혹은 그 사이에 버스 기사가 라디주파수를 바꿔버리는 것들도 역시 너무도 애석한 일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는 것은 알고 있다.

나는 요즘 팔자에도 없던 아이팟의 이어폰을 귀에 꼽고, 내가 듣고 싶었던 음악을 모두 담아서 어디를 가나 듣고 다닌다. 내가 사랑하는 가수들의 노래도, 내가 단지 즐기는 노래도 모두 들어있다. 하지만 모두 우연인 것만 못하다. 우연히 흘러나오던 노래가 주던 반가움과 기쁨은 그것을 흐르게 하는 주체가 내가 되므로 일부분 사라졌다. 문명의 혜택을 크게 받은 덕분에 소소한 즐거움과 거리를 두게 된 나는 그럼에도 우연인 것들을 포기한 채, 편한 것을 선택한다.
Posted by 심준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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