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어느 날

산문 2009. 10. 20. 10:32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10월의 마지막 밤을"

'이용의 잊혀진 계절 중에서'

제철 과일이 있고 제편의점 초콜릿이 있듯 노래도 제철 노래가 있다. 겨울에 듣는 김민기의 '가을 편지'처럼 때 늦은 것이 있을까? 김현식의 '봄 여름 가을 겨울'처럼 이름 그대로 사시사철 상록수 같은 노래도 있지만, 마찬가지 이름 그대로, 권성연의 '한 여름 밤의 꿈'은 수박이 딸린 평상에서, 이용의 '잊혀진 계절'은 찬바람 부는 창가 옆의 책상에 엎드려 라디오로 듣는 것이 제맛이다. 하지만 하필 - 신나야 한다는 강박을 전제로 하는 여름을 제외하곤 - 가을철 노래가 유난히 시절을 타는 것은 참으로 의문이 가는 일이다. 감히 추측을 해본다면, 그 중 한 가지 이유는 가을의 제철 노래들이 참맛을 내는 시간이 짧음일 것이다. 다른 이유는, 스산한 가을은 참 저린 계절이기 때문일 것이다.

얼마 전에 친하게 지내는 형과 치킨에 맥주를 기울였다. 만난 시간이 9시 반이고 헤어진 시간이 새벽 2시경인데 그저 어중이떠중이들처럼 홍대를 거닐다 고작 한것이 치킨에 맥주였다. 그날따라 치킨이 짜더라. 나눈 속없는 대화들이 아련했다. 가을에 나누는 대화는, 그 대화의 주제가 이별이라면 유난히도 그 맛이 진하다. 그것이 쓴 것이라면 더욱 쓰고 짠 것이라면 더욱 짜다. 신기할만큼 그러하다. 그날도 그랬다. 치킨의 맛은 튀기는 사람의 실수 탓이겠지만 시고 짭짤한 대화는 가을 탓이었으리라. 낮에는 높고 푸르렀을, 허나 그 순간은 캄캄했을 뿐인, 가을 하늘 아래가 대화를 그리 만들었던 것이리라.

달력이 붉은 추석이 기다려진다곤 하나 그 마저도 슬픈 가을 하늘 아래에 있다. 가을에는 외로운 사람이 더 외로워지고 슬픈 사람이 더 슬퍼진다. 가을철 연인들의 서로가 더욱 돈독해지는 이유는 각자가 외로워 더욱 서로에 기대고 싶기 때문이리라. 스산한 가을 바람은 서럽진 않지만 슬프다. 그 가을 바람은 결국 점점 더 차가워지고 결국에는 겨울 바람으로 변할 것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가을이 가을이 아닌 더위와 추위를 잇는 길목으로 변해버린 지금, 마음이 황량해져 기댈 곳이 전무하게 느껴지는 지금, 이 가을의 높은 하늘은 나에게 아무런 위로가 되지 못하고 있다.
Posted by 심준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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