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작위리뷰'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9.03.27 GQ라는 잡지가 갖는 가치 5
  2. 2009.03.25 LIFUL
요즘엔 IQ보다는 EQ가 중요한 시대라고 하지만 그건 사회에서나 그런거고 군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마 맥심(잡지 커피믹스 양쪽 다)과 GQ일 것이다. 군대만 가면 왜 이리도 글자가 그리워지는지. 특히나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잡지들에 대한 사랑이 뜨거워지곤 했는데 그 중 나의 마음을 가장 잡아 끌었던 잡지는 GQ였다. 특히나 GQ가 마음에 들었던 이유는 다름 아닌 글. 비주얼과 동시에 글에 대한 과도한 집착을 보여주는 GQ는, 비주얼보다는 글에 신경을 쓰는 나에게 안성맞춤인 잡지였다. 뭐라고 해야되나. 치킨의 닭껍질와 같은 별미라고 해야되나. 패션지글보단 비주얼이라지만 잡지를 넘어 책이라면 글이 먼저라고 생각하는 것이 내 신조이니 말이다.

사회와 격리된 공간인 군대에 있을 때 마냥 좋아 웃고 읽던 GQ였는데 사회에 나와서 보니 이들을 곱게 보지 않는 이들이 너무도 많더라. 아마 글에 너무 집중을 한 나머지, '현학적 표현'이라든지 하는 것들이 종종 보이는데, 이런 것들이 많은 이들이 쉽게 읽을 수 있어야 하는(사실은 그래야 하는도 아니고 그래줬으면 하고 바라는 듯하지만) 사명을 지닌 잡지라는 장르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였는데 사실 GQ의 글을 읽고 크게 어렵다고 느낀 적은 없기 때문에 일련의 의견들에 대해 소심한 반항심을 갖고 있었고 급기야 이런 글을 쓰게 되었다.

결론부터 말하겠다. GQ의 존재가치는 바로 글에 있다. GQ라는 잡지는 애초에, 모두를 위한 잡지가 아니다. 보여주는 제품들의 가격도 0이 너무 길 따름이고, 사람들에게 제안하는 라이프 스타일 또한 제품들의 가격 처럼 상류를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매우 비약해서 말하자면 애초에 GQ는 그들이 보여주는 세상보다 한단계 낮은 경제 수준을 가진 사람들을 위한 잡지다. '동경하는 재미'를 주는 잡지이기 때문이다. 내가 돈을 많이 벌었을 때 하고 싶은 일들이 GQ에 나와있다. 미래의 돈을 많이번 나에게 컴포터블인지 뭔지를 끌고 생일날 선물해준 샤넬 백을 들고 있는 여자친구를 옆좌석에 태우고 파주 해이리의 레스토랑에서 햇살을 쬐면서 먹는 점심식사에 돈을 쓰는 법을 알려준다. 이런 일종의 동경하는, 목표하는 재미를 주는 잡지는 매이저 빅 3 모두 충실히 이행해 가고 있다. 이런 재미는 굳이 GQ를 읽지 않더라도, 타 잡지를 통해서도 잡아낼 수 있다. 매달 브랜드들이 선보이고 싶은 제품군들이 있고 그 어떤 잡지도 그런 브랜드들의 아이템을 놓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해, 비주얼은 같은 알맹이를 어떻게 누가 찍었느냐의 차이다.

GQ의 존재가치는 그들을 패션지로 생각치 아니하고 교양지로 정의할 때 빛난다. 그들은 옷 잘입는 남자를 칭송하지만 글 잘쓰던 문학가는 경배한다. 이 시대에서 '글'이라는 것이 주는 가치에 대해서 매달 역설한다. 이렇게 '글'에 집중하는 잡지는 드물다. 패션의 요소가 50%가 넘어가는 잡지에서 '이원우'가 글쓰는 법을 설명하기란 쉬운일이 아니다. 이는 본인들이 단순히 달달이 읽히고 버려지는 '잡'지를 넘어서 한권의 도서로 비추어지기를 바라기 때문일 것이다. 작년 이맘때의 패션 뉴스는 철지난 유행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겠지만 '이원우'가 설명하는 문장 제대로 쓰는 법은 언제 읽어도 이마를 칠법한 기획이니 말이다. 다시 말하면 시간이 지나도 읽을 만한 기획을 만든다는 것이 좋고 그 기획의 시작이 언제나 '문학'에 있다는 것이 기쁘다. 때문에 GQ의 필진들이 쓰는 글이 지나치게 쉬워버려서는 안된다. 배울 것이 있는 문장이어야 한다. 잡지를 넘어서 한권의 도서가 갖는 가치를 역설하는 GQ라면 말이다. 몇개의 선택항목이 놓여있는 남성교양지 시장에서 GQ를 골랐다면 좋은 문장에 집착하는 그들의 성질을 각오해야 한다. 복잡하고 긴 문장은 좋은 문장이 아니라며 애초에 그 문장을 해석하려 하지도 않는다면 그것이 옳은 것일까. 단순하게 치고 나가는 문장만이 훌륭한 문장이라며 속도감있는 읽기만을 강조한다면 그것이 바람직한 것일까. 굳이 잡지니까, 그래야 할까. 잡지의 문장은 공부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되는 걸까. GQ의 필진들이 쓰는 -그들에게는 그들을 관통하는 일종의 감수성이 있는듯 하다.- 글들은 분명 동화책처럼 쉽지 않다. '적확한'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표현을 쓰기도 한다. 하지만, 적확한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표현을 문맥상 이해하고, 다음의 내가 쓸 글에 사용할 수 있게 된다면 그것은 하나의 획득이다. 왜 잡지의 글은 쉽게 흘러가야하나. 그 안에서 어떤 것을 건질 수는 없는 것인가. 옷 잘 입는 남자를 강조하지만 남자의 속 알맹이까지 글로 채워보고자 하는 GQ는 괜찮은 잡지다. 어렵고 긴 문장이라고 하는데 글쎄, 그렇게 어렵고 그렇게 긴가, 그 문장들이?
Posted by 심준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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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UL

무작위리뷰 2009. 3. 25. 20:39
무작위리뷰 : 리뷰의 대상에 제한을 두지 않는 다는 1차적인 목적과 리뷰라는 장르의 글이 가져야 하는 장르적 성격에 제한을 두지 않는 것을 모토로한 리뷰로 쉽게 말하면, 선별과 성격에서 자유로운 리뷰를 말한다.

LIFUL은 얄미운 단어다. 그도 그럴 것이 남들은 하나 잘해서 먹고 살기도 버거운데 자체 브랜드와 편집 매장 양쪽을 잘 꾸려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앞서 말한 이 '얄미운'이라는 형용사는 동종 타업계의 입장에서 봤을 때 쓸 법한 말이고 -마치 엄친아 같이 말이다.- 소비자인 우리는 아무래도 '고마운'이라든지 '괜찮은' 등의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맞겠다.

이 바닥의 (사실 씬도 싫고 바닥도 싫고 시장도 싫다. 사전을 삶아 먹어서라도 적절한 단어를 언젠가는 찾겠다.)옷 만드는 사람들 사이에서 옷으로 가장 인정을 받는 브랜드인 LIFUL. LIFUL은 꾸준히 신작들을 발표 하고 있으며, 재미있고 과하지 않은 디테일로 사랑을 받고 있다. 꾸준한 것도, 가격대가 높지 않은 것도, 디자인이 무난한 것도 모두 LIFUL의 장점이다. 크게 컨셉을 정해놓지 않고 다양한 부류의 옷들을 만드는 것에 주목하는 것도 괜찮다. LIFUL은 등산 시에 입어도 좋은 WIND BREAKER를 만들고 젊잖은 STRIPE SHIRT도 만든다. 대중들을 위한 옷이라는 것이 '작품'활동의 결과가 아닌 패션'생활'에 일조하는 '제품'생산의 결과라는 점에서 볼 때 다수가 편하게 입을 수 있는 LIFUL은 분명 괜찮은 브랜드다.

편집매장 LIFUL 또한 괄목할 만한 성장을 매년 보여주고 있다. 칩먼데이, 락스미스, 인사이트 등의 재미 있는 브랜드들을 하나 둘, 보여주기 시작하더니 급기야는 크롬, 사이퍼, 인케이스 등의 브랜드들 또한 보여주기 시작했다. 그러고보면 브랜드 LIFUL과 편집매장 LIFUL은 한 가지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넓은 범위. 다양한 이들의 취향을 만족시키는 옷을 만들고 브랜드들을 전개한다. 일관된 감성이 관통하는 브랜드들을 취급한다고 말하고 싶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니 강조하지 않겠다. 한마디만 하자면 LIFUL의 선반 위에 있기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것일 수도 있는데, LIFUL의 분위기에서 크게 벗어난 브랜드는 보지 못한 것 같다는 것. 역시 관점에 따른 것이기 때문에 강요는 하지 않겠다.

공간으로서 LIFUL이 가지는 가장 큰 장점은 바로 몸집의 크기다. LIFUL은 탁 트인 사각형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추가적으론 새하얗기까지 하다. 이것은 예전 B7 에서 보여주었던 BE@RBRICK 전시회에서 가장 강력하게 시사한 LIFUL의 가능성이다. 개인적인 생각인데, 그 당시 앞으로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던 것은 행사의 주체인 B7보다 공간 LIFUL이었다. LIFUL은 그 행사로 인해서 '문화 복합 공간'의 이미지까지 획득할 수 있었고 행사가 잘 됬던 만큼 상당히 오랜기간동안 이미지를 누릴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지금 LIFUL에서 아쉬운 점은 최근 이렇다할 전시회를 LIFUL에서 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마땅한 덩치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다른 분야에 매진하는 탓인지 그 덩치를 타 방면에 활용치 않고 있는 것이 아쉽다. 이것은 스스로 LIFUL을 '문화 복합 공간'이라고 무신사의 컨텐츠에 언급한 에디터로서의 아쉬움이며 팬으로서의 허탈함이다. LIFUL의 큰 넓이는 참으로 매력적이다. 만화 슬램덩크의 능남 유명호 감독은 2미터 괴물 고교생 센터 변덕규에게 이렇게 말한다. '널 크게 할 순 없어.' 문화 복합 공간은 '어지간하다면' 클 수록 좋다. 작은 크기의 공간은 오밀조밀하게 내부를 꾸밀 수 있지만 그 오밀조밀함이라는 표현이 한편으로 빈약한 크기에서 오는 자위적 표현임을 생각할 때 더욱 LIFUL의 크기는 아쉬운 매력이다.

넓은 범위의 의류를 전개하는 브랜드로서, 또한 다양한 취향을 만족시키는 브랜드들을 취급하는 편집매장으로서 그리고 지금은 활동이 미비하지만 앞으로의 가능성을 충분히 걸 수 있는, 그것을 이미 예전에 보여준 문화복합공간으로서 LIFUL은 살아가고 있다. 좋은 소리 쓴 소리를 고르지 않고 했지만 뭐, 팬이라는 것이 원래 그런 것 아니겠는가?
Posted by 심준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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