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몽

운문 2008. 7. 14. 09:56
어느날 발에 쥐가 나서
아무리 얼르고 달래도
아무런 소용이 없던 날이 있었다.

아픈 발을 움켜쥐고선
거울을 보니
눈이 하나 달린 머리에 뿔이난
도깨비가 서있었다.

놀라버린 나
형체가 명확한
얼굴이 붉고 화난
못생긴 도깨비.

꿀같은 꿈만을 그리던
거울속의 내 모습은
어느덧
피맻힌 흰자위,
좁쌀만한 눈동자 뿐이었다.

거울을 깨고 하늘을 보니
계절은 겨울이고 때는 밤이었다.
하늘은 붉었고 구름은 검었다.

영원히 추울 것 같던 그 겨울은
역시나 살갗을 벗겨냈고
끝없이 머물 것 같던 그 밤은
역시나 그대로 어두웠다.

끝나지 않는 겨울과 밤사이에서
나는
눈이 하나가 되고 피부는 붉어진
미친 내 얼굴을 붙잡고
아직도 글썽이는 피를 닦지 못한 체
깨버린 거울을 보고 있었다.
Posted by 심준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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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지던날

운문 2008. 7. 5. 13:53
평생을 두고 단 한번도 가보지 않았던 라면집에서 밥을 먹었습니다.
그토록 지나치면서도 단 한번도 가보지 않았던 2층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마셨습니다.
커피를 마시면서 말을 꺼내는데 엄두가 나질 않았습니다.
제가 고의적으로 상대에게 상처를 주는일은
저에게 쉽지 않은 일이고 그토록 피해왔던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철통같이 닫혀있던 입을 열고
말을 던졌습니다.
항상 직선적인 대화를 즐기던 저는
말을 돌렸습니다. 비겁하게 저는 말을 빙글 빙글 돌렸습니다.
그러나 제가 돌린 그말을, 그는 잡아챘습니다.
웃는 그를 보는데 웃을 수가 없었습니다.
단 한번도 가보지 않았던 라면집과 스타벅스를 갔던 이유는
앞으로도 안갈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저는 야비했습니다. 지금을 추억으로 바꿀 장소를
저는 그토록 생소하고 앞으로 찾지 않을 곳으로 정했습니다.
다만 슬픈 것은
라면집에서 먹은 라면이 너무도 달았고
스타벅스에서 먹은 아이스아메리카노의 향이 너무 진했다는 것입니다.
달았던 라면의 맛과 진했던 커피의 향 때문에
오래토록 추억이 기억으로 변하지 못할까
걱정인 것입니다.
Posted by 심준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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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의 회원의 신분으로 시작해 회원들에게 졸필을 보여주며 내 우매한 생각을 강요하게 된지가 1달이 되어간다. 수많은 사람들이 필연적으로 내 글을 지켜보는 입장이 되어보니 벌거벗은 임금님꼴이 된것 같아서 옷을 아무리 껴입어도 칼바람이 뼈를 애인다.


사실 내가 앉아 있는 이 자리는 높지도 낮지도 않은 딱 이 의자만큼의 높이에 있다. 그러나 이 의자만큼의 높이에 앉아 있기까지 너는 무엇을 했는가 하고 묻는다면 나는 부끄럽다고 대답할 수 밖에는 없다. 우연한 기회에 선물받은 이 자리는 내 글을 남들에게 보이고 싶었던 나에게 그야말로 벌꿀같은 선물이지만 나는 아직도 가녀린 붕대소녀처럼 남동풍에 휘청이고 북서풍에 쓰러진다.


그러나 내가 지금도 백지장같이 질린 얼굴로 회원들에게 졸렬한 글만 보여줘야 하는가 하면 그것은 어리석기 그지 없는 짓이겠다. 나는 내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고 내 글은 천번의 고민과 만번의 퇴고를 경험한 글이라고 말하지 못한다면 어디에 얼굴을 들고 다닐거며 귀한 남의 이목구비를 쳐다본단 말인가. 뻔뻔하게도 결과물의 질을 떠나서 나는 떳떳하며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감히 말하련다. 그렇게 말하지 않는 것마저도 죄라고 울어보련다.


사실 이 블로그를 열게 된 것은 이런 쓸쓸하고 우울한 얘기를 하기 위함이 아니다. 이곳은 항상 무신사 닷컴의 기사만 쓰다 보면 나는 어느새 흔히들 걸리는 메너리즘이라는 쉽게 나을 수 없는 난치병에 걸려서 주변의 조언이라는 민간요법에 몸을 의지할 수 밖에 없을 것임을 알기에 스스로 자극을 주기위해 열어놓은 나만의 연습장이다. 시 부터 일기까지 나의 개인적인 모든 것들과 기사거리부터 단순한 설명문까지 내가 쓸 수 있는 모든 글을 펼쳐보이고 싶은 내 마음이 담겨 있는 내 놀이터이다.


블로그를 열면서 과연 사람이 오면 얼마나 올것인가라는 우문이 머리에 떠오르고 곧바로 올사람은 오겠지 라는 현답이 그 뒤를 따른다. 한 단체에 소속되어 일로서 만나는 이들이 조금씩 늘어만 가는 이 시점에 나는 내 삶의 낙이었던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이 장을 열었다. 무신사 닷컴의 심준섭도 물주고 가꿔야할 장미넝쿨이겠지만 하나둘씩 쌓여가는 우정 꾸러미 또한 내 몸 굶어가며 길러야할 느티나무 한 그루가 아니겠는가.


힐난도 비난도 칭찬도 격려도 좋다. 나를 사랑하는 이들이 하는 말이라면 그것이 독설이라도 사랑의 속삭임일 것이고 미움이라도 우정의 씨앗일 것이다.


나를 찾아온 이들아.

나를 질책하고

나를 사랑해다오.

Posted by 심준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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