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dbye Michael
잘 가요. 내 사랑.
초등학교 6학년 친구가 건네준 워크맨을 통해서 들려 나오던 한 노래는, 당시만 해도 전혀 가수 등의 연예인들에 관심이 없던 에디터에서 한 가수를 사랑하는 법을 알려주었다. 노래의 이름은 Heal the World이었고 가수의 이름은 Michael Jackson이었다. 노래를 듣자마자 환상에 시달린 나는 보이스카웃 수련회 때 과자나 사먹으라고 준 용돈 만원을 아껴서 해당 앨범인 Dangerous를 구매했고, 그 이후로 Thriller, Bad, History등의 모든 앨범을 ‘질렀’음은 물론이고 기회가 되어 미국에 갔을 때, 가장 먼저 국내에 구할 수 없었던 그의 솔로 1집, Off the Wall을 사기 위해 음반 가게에 뛰어들어가기도 했다. 지금도 한 가수에 미치는 이들을 보고 감히 손가락질 하지 않는 것은 그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 잘 알기 때문이다.
가창력에 있어서, 음악성에 있어서, 춤을 포함한 모든 퍼포먼스에 있어서, 그는 최고였다. 들려주는 것과 보여주는 것, 모든 것에 있어서 과연 황제였다. 춤추면서 부르는 노래는 참으로 어렵지만 그에게만큼은 아니었다. 그는 앞으로 가듯 뒤로 가면서 우리 모두를 속였고, 속이는 와중에도 목소리를 뿜어냈다. 자연 그대로의 목소리가 참으로 아름다웠다. Off the Wall부터 Invincible까지 마찬가지였다.
밥딜런 등, 대부분의 전설적인 스타들이 그랬던 것보다 훨씬 심하게 그는 스타일 아이콘이었다. Thriller의 빨간 가죽재킷을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그랬다. Dangerous에서 보여주는 그의 스타일은 진정한 황제의 그것이었다. 패션웹진 에디터가 하는 말 치곤 조금 부끄러운 일이지만 에디터는 ‘앙드레 김’이 그때만 자랑스러웠다. 마이클 잭슨이 시상식 때 그의 옷을 입고 등장할 그때 말이다.
그런 그는 단 한 순간도 빼놓지 않고 타블로이드지의 표적이 되었다. ‘사고뭉치’가 아니었음에도 ‘사고뭉치’취급을 받았고 사람들은 그를 성형중독자로 몰았다. 몸도 마음도 그는 아팠다. 유독 사람들은 그에게만 모질었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게 전 세계의 아이들을 위해서 노래했는데, 우린 그를 아동 성추행 범으로 몰았고 원고의 사기행각(배심원 만장일치)으로 진실이 밝혀진 후에도 그를 매도했다. 좋은 음악을 선물해준 그에게 우리는 너무 야박했다. 왜 그리도 그 앞에서는 예의가 없었는지 모르겠다. “그는 백인 여성이 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라고 말한 잡지가 있었다. 그가 한글을 모르길 다행이다.
5세에 노래를 시작하여 50세에 돌아간 그는 11세에 빌보드 차트의 정상을 밟아보았고 그 이후로 수없이 밟아보았다. 기네스북은 그의 앨범 Thriller를 세상에서 가장 많이 팔린 앨범(기록 당시 1억 400만장)으로 기록하고 있으며 그의 곡 중 13개가 빌보드 차트 정상에 올랐고 4개의 앨범이 빌보드 1위로 데뷔했으며, 4개의 앨범 중 마지막 앨범은 비교적 ‘실패’작에 가까웠던 마지막 앨범 Invincible이었다. 그의 10장의 솔로 앨범은, 도합 7억 5천만 장이 팔렸다. 비슷한 판매량을 찾으려면 음악 앨범보다는 컨버스 ‘올스타’뿐이다. 마지막으로 2002년 명예의 전당 작가부문에 등록된 그의 커리어에 실패는 없었다. 지나친 관심이 그를 깎아 내렸을 지 언정, 그의 걸음이 비틀거렸던 적은 없었다. 한 여름의 태양이 강렬하게 길 위의 우리를 앞으로 괴롭힐 텐데, 그런 우리를 위로해주는 이들은 하나 둘씩 떠난다. 마이클도 그렇게 떠나갔다. 에이즈에 신음하는 아이들을 위한 노래, Gone Too Soon은 이제 그를 위한 노래가 되어버렸다. 잘 가요, 마이클, 내 영웅.
▶◀ 정말, 정말 사랑하는 마이클 잭슨의 죽음을 추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