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

운문 2010. 7. 28. 18:08

한참동안 우산을 가지고 다녔다.

일기예보는 상관없어.

우중충한날이면 항상 우산을 가지고 다녔다.

비가 오는건 너무도 슬프지만

비를 맞는건 더 슬프니까

항상 우산을 가지고 다녀도

비는 오지 않았다. 우산은 짐만될뿐

도무지 쓸모가 없었다.

 

어느날 아침에 하늘을 보았는데

비가 안올래야 안올 수 없는 하늘이었다.

우산을 들고나왔는데

비로소 비가왔다.

들고 있던 우산을 폈다.

쓸모없던 우산은 드디어 이유를 찾았다.

비가 오는 것은 싫지만

우산이 존재를 찾았기에 꽃같았다.


 

Posted by 심준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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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

운문 2010. 2. 15. 09:48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다.
그러나 일하는 태도는 올바르지 않았다.

내 자신의 발전을 위해 노력했다.
그 노력에 깊이가 있지는 않았다.

내 부모에게 선물하는 기쁨을 누렸다.
하지만 어느 해보다 짧은 시간 곁에 있었다.

큰 병없이 건강했다.
내 몸 관리에 철저하지는 못했다.

경조사가 있을 때마다 반드시 연락하려 노력했다.
하지만 직접 찾은 적은 많지 않았다.

남을 위해 노래했다.
그들이 나를 위하지 않았음에 옹졸히 서운해 했다.

여자와 사귀었다.
사랑하지 않았다.

사랑하고 싶고 아끼고 싶다.
신년에는 그가 곁에 있었으면 한다.
Posted by 심준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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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또 은연중에 그 중 몇몇 이들을 잊어가지만, 그 중 쉽사리 잊혀지지 않는 이들은 고민하는 이들이다. 사람을 오래 기억하기 좋은 방법 중 하나가 바로 그 사람의 내면을 만나보는 것인데, 누군가가 고민하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 자체가 내가 그의 내면과 얼핏이나마 조우했다는 것이니 말이다. 고민을 나누는 과정들이 모이면 대상을 알아감과 동시에 나를 전달할 수도 있다. 내가 잊지 않는 사람은 나를 잊지 않는다.

최근 만난 어떤 이는 지금 고민을 하고 있다. 그리고 아주 고맙게도 일부분 그 고민을 나에게 털어놓았다. 이십대 중반의 많은 이들이 고민하 듯 그도 미래를 고민하고 있었다. 다만 고민의 주제로 슬픈 이 세상의 많은 이들처럼 돈을 좇는 것이 아닌 자신을 찾아가고자 하는 것을 두고 있었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많은 이들은 이 고민 대신에 안정적인 직장을 찾는 것에 많은 노력을 기한다. 나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보다 가치있는 것이 자신을 찾는 과정을 넘어서는 것이라는 말에 이의를 달 생각은 추오도 없다. 그리고 지금 그는 그 과정을 넘기 위해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고민의 시작은 믿었던 길의 배신에서 찾아온다. 그것의 크기는, 길이라 생각 했던 것과 함께한 시간이 깊을 수록 진해지는 허무에 비례한다. 길이라 생각했던 것을 발견한 이들은, 대부분이 그 길에 남들과 다른 재능을 보였을 것이며, 때문에 다른 길에 눈을 돌리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종종, 눈물로 포기한 그 길에 다시 돌아오는 이들이 '배운 것이 도둑질'이라 쓴 웃음 짓는 것은 이 때문이다. 다른 것은 도통 재미를 붙여본 적도, 힘내서 해본적도 없기 때문이다.

내 이야기의 주인공은 길이라 생각했던 것에 질려버린 이다. 청소년기가 끝날 무렵 후회를 하기 시작하여 길을 접다, 그야말로 배운것이 도둑질이라 판의 밥을 먹고 있다. 그러나 이제 그 판의 밥마저 지겹다. 마주한 현실에 이제는 지친 것이다. 그럼에도 그가 보여주는 결과물은 다소 청순하고 풋풋하며 일견 노련하기까지 하다. 나는 아직 그가 보여준 것을 많이 보지 못했지만 단 하나를 보아도 알 수 있다. 내가 본 그의 결과물은 그의 일적인 글인데, 그의 자평인 '초보'와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았다. 쉬우면서 동시에 속도감있는 문장이 풀어내는 전문적인 미술 지식은 미술에 대한 앎이 전무한 나에게 한 작가가 미술품을 도구 삼아 청자에게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지 정확하게 전달했다. 일로 때로 취미로 글을 쓰는 나이기에 그것이 매우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가 쓴 글들을 보고 나는 대번에, '무엇을 해도 잘할 사람이로구나.' 라고 생각했다.

그만한 능력이 있는 이가 어디 없겠는가. 그보다 나은 능력을 지닌 이가 세상 어딘가에, 나와 가까운 곳에 있을는지 모른다. 그럼에도 그가 보석처럼 빛나는 인재임을 추측하는 것에 인색할 이유가 없는 것은 그가 보여주는 걸쭉한 인간다움과 여린 가운데의 단단함에 있다. 그리고 겸손함에 있다.

그의 인간적임은 항상 나에게 교훈이 되곤 한다. 나는 그가 다른 이를 폄하한 적을 본 적이 없다. 그는 그 외의 모두를 높이며, 존중한다. 표현하는 것에 대한 가치를 전적으로 인정하며, 특히 사랑의 표현을 최고로 둔다. 그와 알게 된 시간은 간단한 손계산 만으로 가늠될 만큼 짧으나 나는 그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를 예측한다. 그는 그렇게 찰진 인간다움을 유지하며 부단히 살아왔을 것이며 그리 살아갈 것이다.

마른 몸을 이끌고 하루 하루를 살아가지만 힘든 내색하지 않는 그다. 내 한몸 건사하기 어려운 세상에 누가 누굴더러 대견하다 하겠냐만은, 그럼에도 나의 건방짐을 무릅쓰고 그는 대견하다. 작은 체구가 감당하지 못할 일들을 해낸다. 흙과 나무와 철을 섞어 만든 로봇이 아닌 살과 피와 혼이 어우러진 사람이기에 힘듦이 삐져 나올 때가 있지만, 그때 뿐이다. 칭얼대지 않는다. 나는 그토록 여린 가운데 그만큼 견고한 이를 만난 것이다. 그의 그러한 성품은 나의 가치관에 영향을 주기에도 충분하여 어린 나를 단련 시킨다. 쉽게 말해 배울만하다.

그는 앞서 말한 대로 스스로를 '초보'라 칭한다. 나는 내가 일하는 이 '판'에서 그처럼 겸손한 이를 본 적이 없다. 아니, 능력을 가진 채 겸손한 이를 본 적이 없다. 종종 마음에 들지 않거나, 아쉬운 이들을 볼 때가 있는데 그들은 셋에 하나다. 능력이 있지만 능력에 자만하거나, 능력도 없는데 자만하거나, 능력 없이 겸손하다. 어느 것이든 아쉬운데 특히나 이 '판'에 그런 이들이 많다. 허나 그는 다르다. 언급한 대로 그는 이런 저런 구성진 결과물을 보여주지만 그것에 못 미치는 그의 자평은 누군가의 정확하고 송곳같은 평가를 필요로 한다. 날카로운 그 평가는 반드시 그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어 줄 것이다.

누군가 아무개는 그에게 자신감을 가지라며, 자신감만 있다면 얼마든지 해낼 수 있다고 충고한다 들었다. 하지만 나는 자신감의 강요가 짐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짧게 만난 나의 추측에 의하면 그는 늘 그의 겸손과 싸워왔다. 자신의 눈으로 보기에 일구어놓은 모든 것이 모자라 보이기에 더욱 섬세하게 결과물을 제련해왔다. 그런 그에게 강요해야할 것은 자신감이 아니다. 그보다는 그가 보여주는 그리고 보여줄 결과물에 대한 적확한 평가가 그를 위할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적확한 평가가 가녀린 새를 겨누는 새총 같은 것이 아님은 두 말 할 것도 없다. 그는 이십대 중반의 청년이다. 한눈 팔지 않고 십수년 한 걸음을 걸어오다 어느 순간 마음이 휘청한 그다. 꿈 많았던 소녀는 노란 얼굴의 어른들을 만나며 휘청인다. 이제서야 청년이 되었는데, 사회는 그에게 많은 것을 기대한다. 그런 그에게 나는 도저히 자신감을 가지란 말은 하지 않으련다. 정확히 평하여 그에게 자신감이 스미도록 도우련다.

실은 내가 평하지 않더라도 빛나는 그다. 하지만 별이 스스로 빛나는 것이 아니며 때문에 별 스스로가 스스로의 빛남을 알지 못하듯이, 그 역시 그가 얼마나 빛나는 이인지 알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때문에 나는 작게나마 그를 빛내고자 한다. 이처럼 그가 얼마나 빛나는지 공간을 통해 역설하고자 한다. 인간적이고 여리며 그 중 강하고 겸손한 그는 지금 기로에 놓여 있다. 판을 벗어날지, 판에 머물지 고민하고 있다. 어느 곳에 있든 그가 빛나지 않을 소냐. 지금처럼 반짝이는 그의 눈이 흐릿해지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언제나처럼 그가 번뜩이길 희망하고 기도하며, 내가 그의 성장과 유지에 한 손 거들 수 있기를 바란다. 용의 눈에 칠흙 같은 눈동자를 그려버린 나머지 그가 날아가버리지 않기를 비겁히 기도하면서 말이다.
Posted by 심준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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